『사제와 광대』는 중세 기독교 사회의 모습을 민중문화에서 바라보고 있는 책이다. 중세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한 교회가 지배한 기독교 세계라고 사람들은 알고 있다. 그러나 중세를 기독교와 교회의 지배라는 측면에서만 파악하는 것은 수박 겉 핥기에 불과하다. 한편, 중세는 심층적 토대의 측면에서 이교적 민중문화가 강고하게 지속된 전통문화의 보고였다. 특히 중세 기독교 세계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농민은 비록 기독교 신자로 살긴 했어도 민속문화를 오랫동안 보존하며 살아갔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중세문화를 총체적으로 파악하려면 교회 이데올로기와 사회현실을 반드시 함께 고려해야 한다. 그러므로 중세문화를 교회의 규범으로 대변하는 '공식기독교'가 아니라 평신도들의 입장에서 파악하는 '민중기독교'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민중기독교'는 비록 기독교적 외피를 가지고 있지만, 그 속내는 여전히 이교적 민속문화로 채워져 있는 기독교 세계를 뜻한다. 이렇듯 중세문화는 어떤 의미에서 문자를 아는 사람들의 문화와 문맹자들의 문화, 성직자 문화와 평신도 문화, 교회문화와 세속문화가 때로는 갈등하고 타협하면서 이룩한 문화다. 이 책은 중세문화를 이 두 하위문화의 착종으로 보면서 그것을 되도록 민중문화의 입장에서 파악하려 노력했다. '사제적'이고도 어릿광대적'인 중세사를 흥미진진하게 써내려가고 있는 이책은 바로 이러한 시각에서 중세인의 성과 사랑, 결혼과 친족, 죽음과 저승 같은 일상적 주제를 총체적으로 접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