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 다니는 조카가 11월부터 크리스마스 선물 해달라구 까먹으면 안된다고 졸라댄다.
몇 번이고 얼굴 볼 때마다 그러니 솔직히 좀 귀찮고 해주기 싫은 마음도 들긴 했었지만
어느새 나도 모르게 팬시문구점이나 서점 같은 곳을 가게 되면
뭘 해줄만 한게 있을까 하고 둘러보고 있었다.
(크, 이게 귀여운 조카를 둔 삼촌의 마음? ㅋㅋ)

근데 맘에 딱 맞게 손에 잡히는 것이 없는데다가
자주 서점이나 팬시점을 가기도 어려운 상황이라
시간이 갈수록 마음이 조금씩 급해져갔다.
그러다가... 며칠 전,
그날도 일이 있어서 삼성역에 갔다가 잠시 시간이 생겨서
근방에 있는 서점을 들러 신간쪽에 뭐가 있나 싶어서 이것 저것 하나씩 들쳐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창비에서 나온 책을 집게 되었다.
표지가 아주 고급스럽고 우아한 느낌은 아니었지만
나름 장난끼 넘치고 왠지 친숙한 느낌의 책이었다.
음, 창비 좋은 어린이책 대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도 눈에 띈다.
(역시 후광효과를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인가?
아까 그 표지의 장난스러움이 왠지 그럴싸한 느낌으로 다가오는건 뭐란 말인가 ㅋ)

사회와 친해지는 책이라는 타이틀을 보니,
수리, 과학쪽도 좋아하지만 역사에도 관심이 많은 우리 조카가 (물론 만화로 된 역사책을 좋아한다 ㅎㅎ)
재밌게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표지를 넘기고 한 장 두 장 넘기게 되었다.

고개가 좀 아픈 느낌이 들어서 잠시 천장을 바라보았다가
책을 든 손을 보았는데 금세 1/3을 넘기고 있었다.

꽤 재밌었다.
그리고, 선물로 사줘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친김에 좀 더 써보자면
우리 나라에 이렇게 많은 세계기록유산이 있는 줄 몰랐다.
얼마 전 동의보감이 유네스코에 등재되었다는 뉴스를 보긴 했지만
다른 기록유산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내가 알고 있던 것은 직지가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이고 팔만대장경은 해인사에 있다는 정도?
하지만 이 책에는 직지가 어떻게 발견되었고,
금속활자와 목판의 차이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팔만대장경은 얼마나 힘든 과정을 거쳐 만들었는지
등이 쉽게 설명되어 있었다.

이 책이 맘에 들었던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알아야할 내용을 단순히 나열하여 전달하는 형식이 아니라
명탐정과 나지혜가 헤쳐나가는 모험에 독자들이 자신도 모르게 동참하여
그 두 주인공과 같이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해나가게 된다는 것,
이를 통해서 이 책의 주제인 세계기록유산에 대해
재미있게 배울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그리고, 특히 좋았던 것은, 주인공들의 실험과 토론, 견학 등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원리를 이해하도록 하는 점이 맘에 들었다.
이책이 학교에서 현장학습 교재로 사용되어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음, 그냥 이렇게 글을 마무리 지으려니 뭔가 허전하다.
마무리 멘트 하나 날려본다.

예전의 (혹시 지금도?) 교육이 단순 주입식 교육이었다면
지금의 (아니면 미래의?) 교육은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창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교육이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어린이 책도 (이런 류의 책을 soft 학습서라고 불러볼까? ㅎㅎ)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지식의 나열을 통한 일방적인 전달방식을 취함으로써
독자들이 그 지식의 흐름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도록 하던 모습은 이제 그만.
대신, 이 책과 같이 독자들이 그 지식의 흐름에서 능동적인 역할을 하게 함으로써
그 기록유산의 창조자들과 같은 고민과 희열을 맛보게 하는 적극적인 어린이 책들이
앞으로 더욱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그런 적극적인 책이다.
(그리고 재밌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