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사막에 있는작은 도시 힝클리에서는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650명의 마을주민들이 시름시름 앓으면서 원인도 모르는 각종 질병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법률사무소의 여성 조사원 한명이 끈질기게 주민들을 찾아 다니며 서명을 종용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4년 뒤, 미국의 거대 전기가스 공급회사 PG&E는 발암물질인 크롬 6을 방출한 혐의로 소송사상 초유의 3억 3천만달러를 힝클리의 주민에게 배상하게 된다. 2000년 현재 총자산이 352억 9100만달러에 이르는 대기업이 법률사무소의 조사원 한명에게 무릎을 꿇은 이 사건은 에린 브로코비치라는 영화를 통해 세상에 널리 알려지면서 영화제작사에게도 개봉첫주에만 2,800만달러의 수익을 안겨주었다.
1999년 12월 3일. 키스 크로웰 WTO 대변인이 WTO 시애틀 회담의 결렬을 선언한 순간, 11월 28부터 12월 3일까지 세계각국에서 온 85,000명 이상의 NGO 활동가들은 "우리가 회담을 원점으로 되돌려 놨다"고 환호한 반면, 미 상무장관 윌리엄 데일리와 클린턴 대통령은 감당할 수 없는 실망감으로 땅을 치며 개탄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베트남전 이후 미 본토에서벌어진 최대규모의 시위로 일컬어지는 '시에틀 대첩'은 결국 전세계 NGO의 판정승으로 막을 내린다. 21세기 초반 세계경제질서를 주도할 '뉴 라운드'의 뼈대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결국 이 사건으로 NGO는 세계시민사회의 새로운 권력으로 부상하게 된다.
자본주의와 테크놀러지의 세계화는 필연적으로 환경오염과 생태파괴, 사회적 불평등구조를 심화시킨다. 자연의 질서와 인간의 질서를 함께 파괴하는 현대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는 이미 오래전부터 드리워졌지만, 그에 대한 반작용은 여전히 문제의 뿌리에 접근하지 못한 채 이 두가지 사건의 경우처럼 개인적인, 혹은 단체의 연합적 저항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세계공동체의 '지속가능성'마저 위협당하는 상태에서 감시와 저항은, 비록 그 필요성이야 부정할 수 없다하더라도, 여전히 곪은 상처를 도려내기에는 역부족이다. 적어도 프리초프 카프라의 시각에 의하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