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에 던져진 일곱 여자의 이야기
우리는 삶의 크고 작은 토막들을 통틀어 ‘이야기’라고 부른다. 영화도 소설도 노래가사도 역사도 체험도 모조리 이야기라는 말 속에 녹여낸다. 선현들은 그런 이야기를 전傳이라는 형식으로 묶어내기도 했다. 춘향전, 심청전, 흥부전, 박씨전이 그런 것들이다. 이 책 『여자전女子傳, 한 여자가 한 세상이다』는 한국 현대사를 맨몸으로 헤쳐 온 여자들의 이야기다. ‘내 살아온 사연을 다 풀어놓으면 책 열 권으로도 모자란다’고 흔히 말하는, 역사 속 이름 없는 일곱 여자의 인생 역정을 다루고 있다. 이들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닥친 지도 모른 채 한국 현대사의 복판으로 던져졌다. 해방이 되었지만 그것의 의미를 몰랐고, 전쟁이 일어났지만 누가 누구를 향해 총을 쏘고 있는지도 몰랐다.
피난길에 아버지와 오빠를 찾아 산에 올랐다가 동상으로 발가락이 빠져버린 지리산 빨치산 하나.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 만주에 갔다가 중국 팔로군이 되어 마오쩌둥의 대장정에 참여한 뒤 중공군의 자격으로 한국전쟁에 투입됐던 여자 군인 하나. 가족의 생계를 위해 기차에 올라탔다가 만주에서 일본 군인의 성노예 생활을 하느라 자궁까지 적출당한 위안부 하나. 월북한 좌익 남편을 기다리며 수절한 안동 종부 하나. 50년을 죽은 사람만 쳐다보며 살아온 옛날식 미혼모 하나. 피난지 부산에서 우연히 창문 너머 춤을 배웠던 춤꾼 하나. 전쟁을 참혹하게 겪지는 않았으나 일상 속에서 남성과의 전쟁을 누구 못지않게 가혹하게 치른 미술관 주인 하나.
파란만장한 인생을 겪어야 했던 이들의 애절한 삶 속에는 한국 현대사의 파편이 곳곳에 박혀 있다. 그러나 하나같이 내 인생이 처절했노라고 한숨 쉬고 앉아 있지는 않는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고통 속에 내던져졌지만 두 발로 똑바로 서서 수난의 세월을 헤쳐 나왔다. 빨치산에서 탁월한 세일즈우먼으로, 팔로군에서 의사와 기공수련가로 변신했다. 황진이보다 더 혁명적인 춤꾼, 문화계를 선도하는 걸물, 아이들을 사랑으로 보살피는 유치원 원장이 되었다. 자신의 인생을 가꾸고 이웃의 인생에 애정을 베풀며 살아왔다. 그것은 무슨 무슨 이념 때문도 아니고, 거창한 역사의 진보라고 설명할 수도 없다. 오롯이 휴머니즘, 인간애다. 이렇듯 삶에 대한 의지와 긍정, 수난을 털어내는 유머를 껴안고 살아온 일곱 명의 인생행로는 한국 사회가 전쟁과 분단, 가난과 독재를 딛고 발전하는 힘의 바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