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학 논술 학습에 대하여
인간이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 일정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은 필연적 사실이다. 이를 임용시험에 대입해보면 교사로서의 성공은 무수한 탐구와 실패의 시간 뒤에 오는 보람이기도 하다. 이러한 말들이 의미하는 내용은 명확하다. 자신이 임용시험에 합격한다는 자체는 뒤에 든든한 실패라는 우군이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학습은 무수한 도전과 실패의 연속에 의해 자기가 알게 된 어떤 지식을 모종의 문제 장면에서 판단은 물론 자유자재로 자신만의 해결 대안을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른다는 의미가 아니던가.
그러나 최근에는 아주 짧은 시기에 이를 성공할 수 있다는 능률성과 효율성에 자신의 학습을 맡기는 경우가 많다. 이는 교육학 개념으로 보면 ‘중간언어’에 빠진 학습과 다르지 않다. 사고와 그 탐구라는 치열한 과정과 시간을 생략한 결과적 지식, 자신과 거리가 먼 지식을 암기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학습은 자신이 직접 사고하고 경험하는 참여자로서 지식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냥 운동경기장의 객석에 앉은 것처럼 강의실에 앉아 관람자로서 교육학에 관한지식을 배우게 된다. 이런 교육학 학습은 앎의 내면화는 물론 실전에 바로 적용할 수 없다. 마치 요리사 자격증만 있으면 누구나 맛있는 요리를 할 수 있는 게 아니듯이, 교사 자격증만 있으면 무조건 학생을 가르칠 수 있는 게 아니듯 말이다.
교육학이라는 학문은 탐구 실천적 학문이다. 이 때문에 교육학이 현실 학교의 문제와 연관하여 현상의 이해와 대안의 탐색이라는 관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공허한 학문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는 객관식 시험이 단순히 지식의 양적 측정에 지나지 않아 단순한 임기 학습에 매몰되었던 상황을 대조해본다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학원 강사들도 그때 그랬던 것처럼 강의한다. 그러니 예비교사들도 마치 교육학 책을 사서 강의를 들으면 무조건 교육학 논술 문제를 풀고, 학생들을 잘 가르칠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다가 불에 덴 듯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 결국 할 줄 알아야 할」(know how to) 그 무엇이 아니라 그것에 관하여 알아야 할(know about) 그 무엇을 위해 학습한 셈이 된다. 이러한 암기학습에는 사고의 경험이나 그로 인한 실패의 경험이 없다. 단 한 번의 시험 실패에는 오직 남보다 더 적게 암기해서라는 이유만 있을 뿐이다.
실제 대나무처럼 성장이 빠른 존재는 없다. 우후죽순(雨後竹筍)이란 표현이 있듯이 대나무의 성장은 참 빠르다. 그러나 늘 앞으로 성장하는 데에만 몰두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대나무는 마디를 만들며 또 앞으로 나아간다. 시간을 기다리며 마디를 틀어 다음 줄기를 짓기 위한 기초를 꾸민다. 마디가 없다면 미끈하겠지만 대나무의 재질로 볼 때 충격이나 강한 바람에 휘어지거나 쉽게 부러져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마디는 자기 내면의 치열한 구조화이다. 역시 임용시험을 위한 교육학 학습도 자신이 아는 어떤 개념을 치밀하게 마디를 만들듯 스스로의 구조화를 필요로 한다. 이는 대나무뿐만 아니라 모든 성장하는 생명체의 기본적 법칙이다. 그러므로 교육학 지식의 구조화는 자신이 사고하고 엮는 과정으로 하나의 대안이다. 아만 이 책은 그 사고의 고리 중 이론과 실제의 맥락만을 줄뿐이다. 그 안에서 이론과 개념들의 난장판은 탐구하려고 하는 이들에게만 구조적 접근을 허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