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이
"창문은 창밖에 서 있는 나를 보게" 하고 "불을 끄면 창밖에 서 있는 나와 창 안에 서 있는 내가 함께 사라질 수"(「석류」) 있기에 시를 씁니다.
"혼자가 아니라는 말은 얼마나 혼자였던 것"(「모래」) 인지 세어보기 위해 시를 씁니다.
"나를 그대로 둔 채 나도 / 꿈에서 빠져나왔"(「아름다움」)듯이 시 속에서 나도 그러하리라 생각하고 시를 씁니다.
"빈손을 넣어 /빈 주머니를 만지"(「보풀」)는 순간을 기억할 수 있어서 시를 씁니다.
"날씨를 전하는 동안에도 날씨는 어딘가로 가고"(「예보」) 있다는 걸 알기에 시를 씁니다.
"지워지는 얼룩은 / 지워졌고 지워지지 않는 얼룩은 / 지워지지 않"(「기본」)아 시를 씁니다.
"돌들이 일제히 쏘아보는 게 좋아서" 모두가 나눠 가지듯이 "내가 많아지는 게 좋아서"(「두꺼비와 나」) 시를 씁니다.
"나무들 정수리마다 둥지를 트는 새들을 보았고 나는 내 가마를 만졌"(「5월」)던 것을 기억하려 시를 씁니다.
"나를 살게 하는 것들과 나는 만나본 적이 없"(「여분」)어서 찾듯이 시를 씁니다.
"낮아지는 것과 높아지는 것이 같은 날씨 안에서 동시에"(「같은」) 생기듯이 시인도 동시에 살고 싶어 시를 씁니다.
"구멍마다 담긴 안부를 꺼내 읽을 수 있을 것"(「악수」) 같아서 시를 씁니다.
"내 그림자로 인해 나는 나를 구경할 수 있"고 "그물처럼 서로의 그림자가 겹칠 때 그곳은 우리의 집이"(「나를」) 되기에 시를 씁니다.
"신이 나를 잃어버"(「승강장」)린 것 같아 어쩌면 찾아다니다 모든 걸 잃어버린 것 같아 시를 씁니다.
"지구에 지구가 없어서 / 사람에 사람이 없어서" "나는 나를 모형들과 함께 세워"(「모형」)두고 싶어서 시를 씁니다.
"아버지가 아픈 아들을 안고 달리는 게 좋았"고 "목숨과 맞바꿔가면서 달리는"(「계속」) 게 좋아서 계속 시와 앓고 싶은 겁니다.
"죽고 싶다는 말이 솟구칠 때마다 밥을 퍼서 입에 넣었"(「어째서」)듯이 시를 씁니다.
"창문을 씻어주던 어제의 빗물은 뚜렷한 얼룩을 오늘의 창문에 남"(「멍」)기기에 그처럼 시를 씁니다.
"비바람 치는 밤에는 빗방울들이 악착같이 나를 부르는 게 좋"(「동시에」)아서 시도 그래주길 바라며 시를 씁니다.
"내가 모르는 내 비밀이 덥석 자라"나 "내 행세를 하기 시작"(「뒷면」)하는 걸 관찰하기 위해 시를 씁니다.
"나는 썩어가는 감이 거들떠보지 않는 감"(「비극」)이었기에 세상의 모든 그러한 낌새를 기록하고 지우기 위해 시를 씁니다.
"쉽고 깊게 병들 때마다 나는 다시 태어나는 것 같았"(「만진다」)기에 시를 씁니다.
"가지고 싶었던 것들이 모여 있으니 쓰레기장처럼" 보이는 걸 알아도 "아침이 세상으로 나를 내쫓는 일"의 반복이 그러했듯이 "매번 얼굴을 바꿨고 매번 이유를"(「가장 남쪽」) 바꾸는 꿈에서 깨어나고 싶어서 시 쓰기를 멈출 수 없습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노래는 우리를 벗어두고 도망"(「노래의 일」)쳤고, "살인자들에게서도 기도를 빼앗을 수 없다는 나의 한 줄 일기와 / 당신들이 자살하게 해달라는 나의 기도 사이를 헤맬"(「빨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계속 "창문에 서서 내가 나를 구경"(「룸메이트」)하는 일을 반복합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날씨에 갇혀 날씨처럼 바뀔 뿐. 지금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