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을 지탱하고 변화시키며 소멸의 시간을 살아내는 ‘흙의 존재론’
1988년 등단한 이래, 삶과 죽음, 실존에 대한 집요하고도 진실한 탐문과 성찰을 이어온 시인 조은의 신작 시집. 직전 시집 『따뜻한 흙』을 펴낸 지 꼬박 7년 만에 묶어 낸 『생의 빛살』에서, 풍경 너머, 장면 너머에 뿌리 내리고 있는 생의 근원적인 시간성을 응시하는 관찰자의 시선은 더욱 깊어졌고, 개체의 아픔과 세계의 아픔을 통감각적으로 묶는 환상적인 언어 조탁은 더욱 섬세해졌으며, 그리하여 흙의 속성을 통해 생의 ‘사건성’을 구체화하고 자기 존재 안에 깃들인 ‘암흑’과 대면하는 “무섭고도 고요한 시적 순간”을 포착해내는 시적 미학은 더욱 풍요로워졌다.
『생의 빛살』에서 시인이 ‘내 몱이 아닌 흙’에 대해 말했을 때, 그것은 생의 시간에 대해 자신이 소유권을 가질 수 없음에 대한 뼈아픈 자각이다. 그 자각은 ‘흙’으로 표상되는 존재의 근원적인 변이의 차원, 생을 지탱하면서 생을 변화시키고 소멸을 받아들이는 사건들의 이미지를 드러낸다. 그렇게 시인이 대면하는 시적 순간은 죽음의 예감과 삶의 간절한 의지가 서로에게 등을 맞댄 아이러니의 시간이며, 동시에 일인칭의 자기 응시가 마침내 도달한 깊고 정직한 공간이다. 절제된 서정이 취할 수 있는 깊고 차가운 전율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