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게르만 신화-바그너-히틀러를 통해 신화와 예술과 현실의 관계를 흥미롭게 살피고 있는 역작이다. 게르만 신화의 호소력과 보편성, 그 신화적 요소를 장엄하고 비극적으로 그려냈던 바그너, 그리고 바그너가 구현했던 그 영웅적이고 비극적인 무대를 정치적으로 재현하여 대중을 선동하고 휘어잡았던 히틀러의 정치력. 이 셋의 관계를 일관성있는 잣대로 분석하고 있다. 정말 '게르만의 신화가 바그너의 손에서는 예술이 되고, 히틀러의 손에서는 현실이 되어가는 과정'이 흥미로우며, 독일 현대 문화사의 맥락을 넘어 신화와 예술과 현실의 보편적 지평에서도 의미있는 작업이 되고 있다.
한편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시간과 공간의 폭은 매우 넓다. 시공간을 종횡으로 가로지르며 신화를 다루고 있는가 하면 어느새 정신분석학을 다루고 있고 음악을 다루고 있는가 하면 또 문학과 철학을 넘나든다. 또한 정치와 음악, 종교가 뒤섞이기도 한다. 그러나 자칫 번잡스럽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불식시킬 만큼, 저자는 매우 일관된 자세로 주제를 향해 나아간다.
게르만 신화와 바그너, 히틀러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통해 그가 풀어나가는 유럽의 역사 이야기는 전례 없이 끔찍했던 비극인 제2차 세계 대전이, 신화와 예술이 만들어내는 환상의 세계가 현실의 세계를 침범하는 주객전도의 상황에서 잉태되었음으로 보여준다. 에리히 프롬의 가 사회심리학의 관점에서 히틀러와 파시즘의 등장을 분석했다면, 이 책은 미학적 , 문화사적 관점에서 해석을 가하고 있다. 두 책을 함께 읽는다면 더 깊은 이해와 통찰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