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함의 대명사, 영국의 풍경은 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바야흐로 건축의 빅뱅 시대가 열렸다. ‘폭발적 인구 증가에 따른 공간의 수요 폭발’이라는 관점에서 건축의 빅뱅은 어쩌면 불가피한 현대 문명의 요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몇 가지, 우리가 무심하게 놓쳐버리는 화두가 있다. 즉 ‘건축의 질’에 관한 관점이다. ‘너무 크다’와 ‘너무 넓다’ 따위의 느낌은 건물의 입지, 주위 건물, 건축 용도에 따라 제각각이다. 그러나 다행히 건축에는 ‘적당한 지혜’가 존재한다. 적정 규모, 적절한 스타일, 절묘한 공간감에 대한 각자의 판단 기준이 있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건축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건축과 피곤하게 하는 건축.
불과 100여 년 사이에 세계 도시들은 폭발적인 팽창을 거듭해왔다. 새로운 변화는 1990년대 들어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미국과 유럽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이른바 도시 르네상스Urban Renaissance가 동시에 발생한다. 도시 르네상스의 가장 큰 골자는 “도시 내부에 효율성과 쾌적함을 극대화한 친환경 고밀도 공간을 만들자”는 것이다. 쉽게 말해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서 출퇴근·등하교 및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주거지와 은행·병원·세무서·극장·체육관 등 활동 공간이 함께 존재하는 ‘압축Compact’된 도시를 만들자는 이야기다. 이른바 ‘휴먼 신도시’로도 불리는 이 도시 르네상스는 ‘스마트 성장’ ‘슬로 시티’ ‘신도시주의’ ‘어반 빌리지Urban Village’ 등 다양한 이름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단지 진보적 건축가들의 희망 사항이라고만 여겨졌던 도시 르네상스가 어찌된 셈인지 1990년대 중반부터는 급격히 진행된다. 그리고 이 급격한 진행의 중심에는 바로 영국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영국의 사회학자 루스 글래스는 1960년대에 런던 도심 낙후지역의 주택들을 중산층이 사들이는 현상을 ‘젠트리피케이션’이라 명명한다. 이 젠트리피케이션은 낙후된 도심에 활기를 불어넣었고, 오래지 않아 뉴욕의 소호나 런던의 섀드템스, 이스트엔드와 같은 명소들을 탄생시킨다. 그러자 개발업자와 거대 자본이 손을 잡고는 본격적으로 도심 재개발을 추진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원주민이 생활 터전에서 쫓겨나 디아스포라가 되는 새로운 사회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런 폭력성 젠트리피케이션의 대안으로 시작된 도심 재생 프로젝트가 바로 휴먼 신도시 운동인 것이다. 사실 서울은 세계 대도시 가운데 젠트리피케이션이 가장 활발하게 벌어지는 도시다. 사실상 뉴욕, 런던, 파리, 로마, 베를린 등에서는 1990년대 초중반부터 휴먼 신도시 르네상스가 시작되었으니, 젠트리피케이션의 체험은 이미 넘어선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서울의 선택이 휴먼 신도시가 아니라 ‘용산 참사’(2009)라는 젠트리피케이션의 극단적인 폭력 모델이었다는 점이다.
영국은 그 폭력 모델의 정반대에 위치해있다. 휴먼 신도시 운동, 도시르네상스의 맨 앞에 영국이 있다. 영국 건축은 세계 건축의 전위를 달리고 있으며, ‘하이테크 건축’이라 불리는 최첨단 공법의 건축에서도, 생태건축에서도 앞장서 있다. 문화유산과 자연환경을 배려하는 도시 미관 차원에서도 영국은 모범 사례로 꼽힌다. 영국 건축이 특히 대접을 받는 이유는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제공하는 이른바 ‘휴먼 스케일Human Scale’이라는 관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영국 건축도 산업화 과정을 겪으면서 시작되었다.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영국의 초기 산업화 과정을 ‘악마의 맷돌’이라고까지 불렀다. 그만큼 산업혁명은 인류에게 편리함과 동시에 끔직한 질병과 환경 문제, 빈부격차와 같은 문제를 안겨주었다. 영국은 그러한 끔찍한 과정 속에서 아름다운 건축을 일궈낸 나라다. 이런 영국 건축의 양면성을 저자는 여행자의 눈길로, 전문가의 시선으로 놓치지 않고 읽어냈다. 서펜타인 파빌리온이나 테이트 모던의 ‘터빈 제너레이션turbine generation’처럼 런던 르네상스의 성과들을 찬탄하면서도 산업혁명에 얽힌 끔찍함을 놓치지 않고 이야기 한다. 산업혁명 이후의 대안적 실험들, ‘미래형 공동주택’ ‘에덴 프로젝트’와 ‘대안기술센터CAT’ 같은 친환경 실험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우아한 나라 영국의 풍경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건축과 역사 이야기가 조화를 이루며 흥미를 자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