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의 새로운 실험을 보여주었다는 평과 함께 주목받은 이기인 시인이 5년 만에 펴낸 신작 시집. 이기인 시의 모태인 공장 ‘소녀’들을 비롯, 비정규직 노동자, 외국인 노동자, 독거노인, 버려진 아이 등 이 땅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바닥의 삶’이 담담한 필치로 그려진다. 소외된 이들을 향하는 낮은 눈길로 고통과 희망을 오가는 삶의 장면들을 정제된 시어로 포착해내 슬프고도 가슴 찡한 울림을 선사하는 작품집이다.
이기인 시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현실의 무게에 짓눌린 존재들이다. 고달픈 삶을 하루하루 꾸려나가야 하는 사람들이기에 이들의 일상은 슬픔과 고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눈여겨볼 부분은 그럼에도 시인은 이러한 슬픔들을 눅눅함 없이 담담하게 그린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그는 어떤 거창한 담론을 부르짖거나 현실의 심연을 파헤치려는 격정 없이 삶의 한 장면을 세심하게 포착하는 데 집중한다. 그의 시가 대체로 차분한 정적 속에 읽히는 것 또한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