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배변이다?
『역사 미셀러니 사전』의 개정판이다. 화산학자인 저자, 앤털 패러디는 이 책을 쓰기 시작할 당시 137억년에 해당하는 초인류사를 ‘모두’ 다룬 역사 책을 의도하였다. 하지만 빅뱅 이후 첫 천만 년의 역사를 다루는 데만도 상상을 초월할만큼의 긴 시간이 든다는 사실을 깨닫고, ‘모든’에서 조금(?) 양보하여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쓰기로 계획을 변경하였다. 이렇게 ‘모든’에서 ‘거의 모든’으로 궤도를 수정하고나니 패러디는 그동안 마음 속에 꽉 차 있었던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글쓰기도 한결 자유로워져 평소 거침없이 표현해왔던 위트 넘치는 풍자로 아주 재미있는 역사적 사실들을 다뤄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은 크게 자연사, 문화사, 생활사, 과학사로 분류한 뒤 어떤 규칙이나 원칙 없이 철저하게 저자의 주관에 따라 키워드를 설정하고 이에 관한 재미있는 역사적 에피소드들을 ‘미셀러니’ 방식으로 소개한다. 대륙이동설이나 다윈의 진화론이 등장하는가 하면 별안간 철학이나 심리학 또는 종교론을 논하기도 하고, 또 화장지, 세탁, 술, 커피, 피임법 등의 생활미시사 속에 숨겨진 재미있는 역사적 연원들을 소개하기도 한다.
저자는 카의 물음에 “역사란 쾌변(shite)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해괴하고 엉뚱하게 들리는 그의 역사에 대한 정의는 결국 카와 같은 궤에 서 있다. 즉 배설을 위한 장 운동의 시점에서 볼 때 식욕에 내재된 우리의 욕구는 과거에 해당한다. 또 장 운동을 통해 배설된 이른바 ‘배변’은 미래에 해당한다. 결국 배변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우리의 욕망을 투영해 볼 수 있는 또다른 리트머스 종이다.
저자는 이 리트머스 종이에 해당하는 배변에 위트와 패러디와 패러독스를 섞어 ‘쾌변’으로 변화시켜 놓는다. 위트와 패러디와 패러독스는 숙변처럼 고여 있었던 역사관을 쾌변으로 변화시키는 신선한 ‘푸른 주스’(prun juice) 같은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다 읽고나면 차고 시원한 푸른 주스 한 잔을 쭈욱 들이킨 기분이 든다. 곧이어 우리의 정신에 내재되었던 갈증과 숙변같은 답답함이 ‘뻥’하고 뚫리는 쾌감을 맞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