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무로 신이찌는 근대의 ‘서양의 충격’이 동아시아 내부에서 변형되고 재구성되는 ‘사상연쇄’란 개념을 창안해 거시적인 안목에서 근대의 역사상(像)을 제시한 지적 성과를 발표해왔다. 그의 전공은 일본 정치사상사인데 본인은 그 표현 대신에 ‘법정사상연쇄사(法政思想連鎖史)’라는 독창적인 개념을 쓰고 있다. 다시 말해 일본에 국한되지 않은, 일본을 필터로 이어지는 동아시아의 사상적인 연쇄를 역사적으로 규명한다는 뜻이다.
야마무로 신이찌는 일본 근대를 기구 제도로서의 국가 건설이 아닌 ‘국민의 형성’이라는 관점에서 파악해온 선두주자이면서 종래 일본 정치사상사의 맹점이었던 ‘아시아의 부재’라는 문제를 정면돌파하여 비판적으로 극복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동)아시아를 새로운 생활양식이나 가치를 창출하면서 함께 만들어나가는 장(場)이라는 의미의 역사적 ‘공간’으로서 사고하는 입장을 취한다. 일본에서 유행하는 담론인 ‘국민국가론’이 국민국가의 억압성을 해체하는 데 몰두하다가 그로부터의 일탈 내지 그 부정으로 치닫는 경향을 비판하면서, 근대국가를 만든 주체인 국민이야말로 국가를 바꿔나갈 수 있다고 전망하는 그의 입장은 국민으로서의 주체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국민국가의 해방과 억압의 이중적 역할에 대한 좀더 진중한 논의를 이어가야 할 우리의 현황에 비추어볼 때, 그의 입론은 우리에게 적잖은 시사점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