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가하는 돈으로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이야기
『내 이름은 망고』의 작가 추정경의 세 번째 장편소설 『죽은 경제학자의 이상한 돈과 어린 세 자매』가 출간되었다. 전작들에서 추정경은 우리 청소년문학이 미처 탐색하지 않았던 새로운 공간으로 독자들을 안내한 바 있다. 데뷔작 『내 이름은 망고』에서는 열일곱 살 소녀를 머나먼 캄보디아에 떨어뜨린 뒤 좌충우돌 모험담을 선보였고, 『벙커』에서는 야성적인 소년들을 한강대교 밑 비밀스러운 벙커로 불러들여 폭력이 어떻게 싹트고 번지는지 탐구했다. 이 두 작품에서 공간은 사건이 일어나는 배경 이상의 의미였다. 오히려 공간이 이야기를 낳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추정경은 공간에 깊이 천착한 이야기, 공간이 존재해야 시작될 수 있는 이야기를 선보여 왔다.
신작 『죽은 경제학자의 이상한 돈과 어린 세 자매』도 그렇다. 부모를 잃은 어린 세 자매가 무허가 컨테이너촌에서 출발해, 대안화폐를 쓰는 낯선 공동체로, 어린 소녀들이 철야 노동을 하는 휴대폰 공장으로 과감히 이동하면서, 가난에 옭매인 사람들이 지금 이곳에서 감내해야 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여기, 가난하지만 굳센 세 소녀가 사람의 힘으로 어찌해 볼 수 없을 것만 같은 현실의 벽을 부수고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려고 시도한다. 책을 펼치자마자 등장하는 강렬한 첫 장면, 폭설이 하염없이 쏟아지는 속에서 세 자매 중 둘째이자 주인공인 ‘온다정’이 컨테이너 지붕 위를 바쁘게 옮겨 다니며 넉가래로 눈을 치우고 또 치우는 장면이 암시하듯이, 이들은 현실의 힘이 아무리 강력하고 끈질기게 짓눌러도 무릎 꿇지 않는다.
이처럼 추정경은 한국 사회의 단면을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무허가 컨테이너촌과 대안 공동체와 대량 생산 공장이라는 세 공간을 빠르게 통과하면서, 자본이 사람 위에 군림하는 세상, 자본의 힘에 짓눌린 사람들의 행로, 가난의 대물림,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한 세상, 그리고 이 모든 난관과 불길한 조짐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미 있는 시도들을 특유의 생동감 넘치는 필치로 보여 준다.
이 작품이 더욱 흥미로운 것은 세 자매가 당도한 새로운 세계도 완전무결하지 않다는 점 때문이다. 대안을 꿈꾸며 힘겹게 쌓아 올렸던 세계는 어느 날 처절하게 무너지고, 이제 세 자매는 모든 노력이 무위로 돌아간 현실에서 다시 시작한다. 이런 면에서 이 이야기는 폐허 위에서 새롭게 출발하는 희망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울러 희망이란 언제나 미완성 상태로 우리 앞에 새롭게 등장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