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으로 황금빛 오름을 빚고, 오줌으로 바다를 만들었던 거인 여신 설문대할망 신화
제주에서는 제주의 바다나 산, 바위는 물론 나무며 돌 하나에도 저마다의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다. 가신이나 잡신을 뺀 숫자로만 1만 8천에 달하니 이 정도면 제주도를 신화의 땅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그 중에서도 이 책의 저자가 주목한 것은 창조신화이자 위대한 여신의 모습이 원형 그대로 보존된 ‘설문대할망’ 신화다. 그동안 설문대할망 이야기는 어린이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여러 권의 책을 통해 소개되곤 하였는데, 저자는 일반 독자를 위해 『태초에 할망이 있었다』에서 동서양 고대 신화 속 여신들과의 다채로운 비교를 통해 우리에게 존재해 왔던 ‘위대한 여신’(Great Mother)으로서의 설문대할망을 재조명하고 있다.
저자는 설문대할망 신화에 나타난 빛과 길쌈, 신의 숫자 100과 인간의 숫자 99, 배변을 통한 창조, 남근과 다산(多産), 불의 사용 등의 원형 이미지를 분석하기 위해 그리스 신화와 북구 신화는 물론 동북아시아와 아프리카, 북미인디언 신화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의 신화에 나타난 원형 이미지들을 호명해 구석구석 살피고 비교하며 그 신화들이 결국 하나이자 여럿이며 여럿이자 하나임을 보여준다. 고대신화 뿐만 아니라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고려사』 등 역사시대의 문헌에 등장하는 사료도 저자의 검토 목록에서 빠지지 않는다. 심리학과 신화학은 물론 역사학과 수학, 우주론에 이르기까지 인용되는 학자들의 스펙트럼도 검토하고 있는 자료만큼이나 폭넓게 다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