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책으로 서구 지성사의 거장을 만나다
살아 있는 문화 평론가 중 가장 영향력 있다고 인정받는 테리 이글턴의 『반대자의 초상』에는 20세기 문화의 지평을 새로이 연 상징적인 인물들이 등장한다. 멀게는 오스카 와일드, W. B. 예이츠, T. S. 엘리엇, I. A. 리처즈,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에서 가까이는 자크 데리다, 죄르지 루카치, 슬라보예 지젝, 가야트리 스피박, 스튜어트 홀까지. 문화 이론이 ‘인민의 아편’이던 시대를 산 이 거장들은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구조주의, 탈마르크스주의 등을 풍성하게 했고, 지금도 복잡한 세상을 해석하는 안내자의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 책은 불친절한 방식으로 이 인물들을 읽는 서평집으로 저자는 떠오르는 대로 자유롭게, 그러나 논리정연하게 핵심을 짚어내는 것은 물론, 명쾌한 어조로 비판하기도 한다. 그리고 동시에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이라고 할 만한 지식과 통찰을 자랑하는 이글턴은 방대하고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알맞게 버무려 독자들의 지루함을 달래준다. '런던 리뷰 오브 북스', '뉴 레프트 리뷰' 등에 기고한 칼럼을 모아놓았는데, 여기에서 저자는 포스트모더니즘을 이야기하다가 낭만주의를 논하고, 유토피아 소설을 분석하다가 어느새 헤겔을 비평하며, 브론테 남매의 몽환적인 가정사를 읊조리다가 리처즈의 과학적 기호학을 해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