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살의 혈기왕성한 청년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뱅상 욍베르. 단란한 가족과 예쁜 여자친구, 원하던 직장까지 두루 갖춘 꿈 많던 이 청년은 어느 날 교통사고로 졸지에 식물 인간이 되었다. 9개월 동안의 혼수상태에서 깨어났을 때 그의 몸에서 남은 기능이라고는 청각과 오른쪽 엄지손가락을 까딱하는 정도. 차라리 의식이라도 돌아오지 않으면 더 좋았을 것을. 트럭에 깔려 뭉그러진 자신의 외모에 구역질을 하며 병실을 나서는 사람과 욕창이 난 엉덩이 하나 뒤집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의식하는 것, 그 무엇보다도 더이상 회복을 징후를 발견할 수 없으니 다른 곳으로 옮겨달라는 재활센터의 선언은 그에게 사망선고나 다름이 없었다.
뱅상은 그때부터 어머니가 주욱 불러주는 알파벳 A,B,C,D... 중에 원하는 단어의 알파벳이 나오면 엄지손가락을 움직이는 방식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담아내기 시작했다. 그는 세상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나는 그때 이미 죽었습니다. 도대체 당신은 무슨 권리로 다른 이의 생명을 연장하려 하는 겁니까." 하지만 언론의 지원과 대통령에게 보내는 청원서로도 자신의 뜻을 관철시킬수 없음을 깨닫고 그는 어머니를 설득한다. 그리고 링거에 다량의 신경안정제를 투입받아 길고 지루했던 3년간의 세월을 스스로 정리했다.
이 책에서 뱅상은 죽음을 결정하기까지 솔직한 자신의 심경을 고백하고 있다. 그 온갖 삶에 대한 희망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왜 자신이 죽음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는지, '이미 죽은 목숨'을 의도적으로 연장하고 있는 현대의학의 비윤리성을 토로한다. 책에는 그와 같은 처지였으나 처음 몇년간의 우울증과 자살의 충동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의 희망을 찾은 이의 편지, 그리고 안락사 허용을 옹호하는 한 소녀의 연설문 등 현대 안락사 논쟁의 쟁점을 여러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글이 함께 실려 있다. 연설문에서 소녀는 말한다. "인간은 마지막까지 자신의 존엄성을 지킬 권리가 있으며, 때문에 그 어떤 것보다도 환자 당사자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고. 국내에도 얼마 전 한 아버지가 수십년간 식물인간 상태로 있던 딸의 호흡기를 떼어낸 사건이 보도되었다. 이미 회복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 치료를 중단하는 소극적 방식의 안락사가 곳곳에서 음성적으로 행해지고 있음을 볼 때, 안락사 허용 논쟁은 더이상 남의 나라 문제만이 아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