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손으로 그린 것 같은 실크스크린을 제외하고 판화로 된 그림은 아직 눈에 잘 안 익는다. 유명한 '나무를 심은 사람'의 판화 그림도 사실 따뜻하게 느껴지지가 않는다. 선이 날카롭기 때문일 것이다.

판화 그림책인 이 책을 재니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했다. 함께 시킨 여러 권의 책 중에서 이 책만 가지고 퇴근했다. 다른 이유보다도 글밥이 적다는 것 때문에 선택했던 것.

그런데 재니는 지금까지의 책보다 서너 배는 긴 이야기인 이 책에 놀라운 집중력을 보였다. 일부러 생략하는 이야기 없이 모두 읽어주었는데 끝까지 경청하는 데다가 그림을 짚어서 일일이 그것이 무언지 궁금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그러기를 네 번을 하고 나서야 나에게 저녁 먹을 시간을 준다. 그리고는 혼자서 책을 짚고 엉덩이를 들고서 그림을 감상한다. 사진을 못 찍은 것이 안타깝다.

거위와 함께 사는 할머니가 거위의 새하얀 털을 모아 이불을 지은 다음 그 이불을 한 번 털게 되면 하얀 눈이 소복소복 내린다는 이야기. 하얀 눈이 내린다고 했더니 재니, 손을 번쩍 들어 창밖을 가리킨다. 불과 얼마 전까지 창밖에 눈이 내렸다는 얘기.

지금은 그 자리에 폭신한 목련이 한껏 벌어져서 재니가 그 자리에서 떠날 줄을 모른다. 하긴 재니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관심을 보인 것이 꽃이요, 엄마나 아빠보다 먼저 말한 것이 꽃이며, 글자로도 다른 것보다 먼저 깨친 것이 꽃이니 서운해도 어쩔 수 없지. 그렇게 아름다운 꽃을 바라보고, 아름다운 그림을 바라보는, 기저귀 불룩한 재니의 뒤태가 나는 더 아름답다.^^;;;

다시 보니 이 그림책의 판화 그림...정말 예쁘다. 따뜻하고 포근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이건 뭐냐...눈 오는데...해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