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원은 정몽주를 제거하는 등 조선 건국에 일등공신이었고, 그 권력 또한 막강했습니다. 그런 탓에 이방원은 사대부들의 견제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성계는 정도전을 비롯한 신진 사대부의 뜻을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공신 명단에서 이방원의 이름을 빼기도 했숩니다. 또한 조선을 건국하는 데에 누구 보다 많은 노력을 했던 이방원을 놔두고 막내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면서까지 신진 사대부의 뜻을 존중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화근이 되어 제1차 왕자의 난이 벌어지고, 이방원은 정도전 등을 일거에 참살하였으며, 세자를 비롯한 배다른 두 동생을 모두 죽이고 난 후 권력을 잡았습니다. 제1차 왕자의 난 발생 원인은 이방원 개인의 불만이 원인이기도 했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이방원과 정도전의 정치적 이상에서 벌어진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정도전은 왕권과 신권의 조화를 꾀하는 이상적인 왕도정치를 표방했지만 이방원은 강력한 왕권에 바탕을 둔 왕조국가를 지향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