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대군은 계유정난을 일으키고 1455년(단종 3) 단종을 폐위시킨 뒤에 스스로 조선 제8대 왕위에 올랐습니다. 성삼문은 수양대군, 즉 세조를 반대하기 위해 아버지 성승과 박팽년, 박중림, 유응부, 허조, 권자신, 이개, 유성원, 김질 등과 함께 단종 복귀를 꾀했습니다. 하지만 김질의 배신으로 세조를 제거하려던 계획이 들통 나고 말았습니다. 세조는 성삼문은 직접 문초하면서 회유했지만 끝내 세조를 ‘임금’이라 부르지 않고, ‘나으리’라 부르며 세종과 단종에 대한 충절을 지켰습니다. 성삼문은 아버지 성승, 이개, 하위지 등과 함께 군기감 앞길에서 거열형을 당한 후 목이 잘리어 3일 동아 저잣거리에 효수되었습니다. 유성원은 일이 발각되자, 스스로 자결을 했고, 박팽년은 옥중에서 사망했습니다. 이휘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