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몸통’이자 ‘꼬리’였던 비잔티움은 그다음 역사의 주역들이 등장한 근세의 여명기부터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그 역사를 혹독하게 부정당하고 매도당했다. 18세기 프랑스의 정치철학자 몽테스키외는 비잔티움을 가리켜 “공허한 의례와 복잡다단한 관료제에 집착하는 허약하고 소심한 사람과 부패한 환관들이 정사를 좌지우지한 전제국가”라며 무가치하다고 말했고 볼테르 또한 “인간 정신에 대한 치욕”으로까지 말하며 비잔티움을 철저히 깔아뭉갰다.
『비잔티움-어느 중세 제국의 경이로운 이야기』는 힘껏 창을 던져 이러한 침울한 잔상들을 품고 있는 거울을 깨뜨리고자 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지난 40여 년 킹스칼리지, 프린스턴대 등에 적을 두고 발굴 현장과 연구실을 오가며 오로지 비잔티움의 역사 연구에 천착해온 저자는 교직에서 퇴임한 후 자신의 비잔티움사 연구를 총괄적으로 담아낸 이 책을 써냈다.
저자는 책에서 비잔티움은 숙련된 관료제와 조세제도 위에 세워진 황제 정부, 로마법에 기초한 법률조직, 고전과 이교적 과목이 다수 포함된 세속적 교과과정, 정교회 교리, 그리스 교회에 보존된 예술과 영적 전통, 많은 나라들이 앞 다투어 모방한 대관식과 궁정 의례를 후대에 유산으로 남겼다고 말한다. 비잔티움은 전혀 수동적이지 않았으며 소중한 전통과 유산을 화려하게 되살려낸 능동적이고 창의력 넘치는 나라였다는 게 이 책의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