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셔의 작품은 이 세상이 보이는 것 그대로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현실은 긍정되는 동시에 부정되고 있으며, 객관화되는 동시에 상대화 되고 있다. 이 때문에 그의 세계는 차가운 분위기와 팽팽하게 긴장된 생소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의 세계에 대해 거리를 두면서도 감정적으로는 몰입하게 된다.
빛과 어둠이, 천사와 악마가, 낮과 밤이 공존한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사라져 물고기는 하늘을 나는 새로 변화해 가며, 배경과 형상의 구분도 명확하지 않다. 수평의 벽은 동시에 수직의 천장이나 바닥이 되고 바닥은 다시 벽이 되며, 위에서 떨어진 물줄기의 흐름을 따라가면 다시 처음에 물이 떨어지는 곳에 도달하여 물은 끝없이 떨어지고 흘러가서 또 떨어진다. 평면과 3차원이 넘나드는 이율 배반적인 공간, 가상과 현실이 결합한 기묘한 세계는 보는 이에게 혼란을 주지만, 익숙하지 않은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듯한 낯설음은 결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네덜란드 판화가 M.C. 에셔는 평생 448점의 판화 작품과 2,000점이 넘는 드로잉 작품을 제작했다. 그의 작품은 유희의 결과였다. 그 유희는 확실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사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불가능에 도전하며 집요하게 매달려야 하는 것이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작고 알아보기 쉬운 형상들로 평면을 분해하거나 평면과 공간을 혼합하고 중력을 무시하는 그의 '놀이'를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홀로 길을 걸어가는' 고독한 과정이었지만, 그 유희를 통해 에셔는 커다란 즐거움을 맛보았다.
이제 에셔의 놀이와 즐거움에 공감하고 열광하는 사람들은 전세계적으로 수백만에 달하며, 미술가는 물론이고 수학자, 심리학자 등도 그의 작품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현대 그래픽 디자인 분야에서는 그의 작품들이 계속적으로 응용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에셔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직접 설명해 주기 때문에 모호한 그의 작품에 더욱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 그리고 에셔에 대한 깊은 이해에 기초하여 쓰여진 그의 삶과 예술에 대한 초상은 에셔의 세계를 더욱 명확하게 느끼도록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