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서
내가 뚱뚱하다는 단어를 쉴 새 없이 써대는 이유를 알려주겠다. ‘뚱뚱하다’는 태생부터 부정적인 단어가 아니다. 원래는 크기를 형용하는 형용사일 뿐이다. 작가이자 블로거인 마리안 커비가 설명했듯 ‘뚱뚱하다 fat’는 ‘지방’ 조직을 많이 갖고 있다는 뜻이다. 이 정확한 개념을 정확한 방식으로 설명하는 단어는 이것밖에 없다. 그렇다면 ‘나는 뚱뚱하다’라고 말하는 것은 내 신발이 까만색이라고, 구름이 몽실몽실하다고, 코미디언 밥 사겟이 키가 크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어야 한)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객관적 사실을 기술한 거니까. 따라서 ‘뚱뚱하다’에 내포된 부정적 의미는 죄다 이 단어를 둘러싼 사회가 구축한 것이다. 이 단어에 대한 우리의 혐오는 전적으로 학습되었다. _p9
인터넷에 악의가 넘쳐나는 건 놀랄 일이 아니다. 왜냐고? 지금 미국(그리고 다른 나라) 사람들은 일생을 바쳐 헛된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신체 통화의 개념은 우스꽝스러운 부조리극을 불러왔다. 우리는 모두 자기 몸을 혐오해야 한다고 배웠으며 다른 대안이 있다는 건 꿈에도 생각지 못한다. 그러나 사실, 대안이 있다. 몸 사랑하기는 뚱뚱한 사람만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것이다. 누구에게나 자신을 사랑할 권리가 있다. 마른 사람도, 뚱뚱한 사람도, 키 작은 사람도, 키 큰 사람도. 장애가 있든 없든, 몸매와 피부색이 어떻든, 성별과 젠더를 막론하고. 혐오에 찌든 사람도 사랑이 넘치는 사람도 누구나 자신을 사랑할 권리가 있다._p94
우리는 상황에 적응하고, 우리 몸에 자신감을 갖지 못하게 소리치는 세상과 싸우고, 여기서 잘 살아갈 방법을 찾는다. 눈을 감고 구두 뒤축을 부딪치면 마법처럼 몸을 사랑하게 된다는 뜻이 아니다. 당신의 몸은 상처와 고통의 한가운데에서 장벽에 가로막혀 있지만, 그럼에도 당신이 아름답지 않고 못생기고 말쑥하지 못하고 소심하고 연약하며 찌질하고 멍청하고 만족할 가치가 없다고 믿는 세상에 존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만은 그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_p196
규칙을 무시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입기 시작하면서 나는 패션이 매우 정치적임을 깨달았다. 자신의 몸을 축소하거나 감추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는 건 우리 사회에서 물의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보란 듯 떳떳하게 자신의 몸을 사랑하고, 자신의 몸이 공간을 차지하도록 허용하고, 무엇이든 좋아하는 옷을 입는 것은 혁명적이었다. 크기, 모양, 피부색, 나이를 불문하고 모든 몸이 그러하다. 당신이 스스로를 사랑하면 사람들은 넋이 나가버린다._p275
뚱뚱한 여자도 사랑을 한다. 그 대단한 사랑을 뚱뚱한 여자도 한다는 말이다. 불꽃 튀는 사랑, 너의 모든 1인치가 완벽한 사랑, 키스할 수 없다고 생각한 곳까지도 키스할 수 있는 사랑, 평생 뭐든 해줄 수 있는 사랑, 갈망하고 애정이 넘치고 평생 헌신하는 사랑. 뚱뚱한 여자도 이런 사랑을 한다. 어디에서나._p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