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시종 장편소설 ‘물 위의 나무’는 군부독재 5공 치하의 엄혹했던 시대상을 조명하고, 그 속에서 얼룩진 욕망과 허황된 환호로 부대끼며 살아가던 군상들의 굴곡진 생의 궤적을 해부한 소설이다.
소설속에 등장하는 700년 내력의 유서 깊은 용계리 은행나무’는 당대의 준엄한 심판이었던 6월 혁명, 음험한 권력농단과 자본침투의 3S 정책, 이권다툼과 이전투구에 목숨 건 군상들의 욕망·충동 모두를 한 데 아우르는 신묘한 상징이다. 가슴 찢는 아비규환과 물질 위주 사회세태 속에서, 때론 절규와 비탄으로 때론 철없는 탐욕으로 마치 끓는 용광로처럼 어우러지며 시대를 살아나갔던, 우리네 과거 인생살이의 뜨거운 핵(核)이다.
작품 속에서 용계 은행나무는 특정한 어느 누구 집단의 선전문구를 대변한다거나, 거창한 교훈주제의 강박, 혹은 허름한 이념논쟁의 가운데에 서있지 않다. 다만 천지자연의 본질적 자아로서, 고려·조선에 이어 근현대 대한민국 역사의 산증인으로서, 스스로의 제자리에 의연히 머물고 있을 뿐이다. 일방적으로 기울지 않는 중용(中庸)의 자세로, 폭염처럼 맹렬한 5공 군부통치를 막아내 민중들이 숨 쉴 수 있는 시원한 그늘을 선사해주고 있을 뿐이다. 임하댐의 건설, 권력의 압제, 이권개입에 눈 먼 인간들의 오만 잡다한 분쟁과 억측에 가까운 공방들이 오고 가도, 일희일비하지 않고 자신의 본분을 꿋꿋이 지켜나갔던 나무의 일생. 그것은 격동의 80년대를 온몸으로 겪으며 살아나갔던 민중들의 존엄한 형상과도 같다. 우리네 어른세대 민중들은 그 혹독한 시절을 관통해나가면서도 결코 과도한 절망이나 자포자기의 태도를 취하지 않으셨다. 차오르는 의분(義憤)에 떨쳐 일어나 결사항전 할지언정, 속절없이 은둔하거나 모른 척 주저앉지 않으셨다. 그 묵직한 동력이 바로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민주정신을 고취시킨 자랑스러운 불꽃이다. 백시종 소설가의 신간에서 작품세계의 원심력을 내포한 용계리 은행나무는 바로 이 같은 절의의 불꽃과 그 미학적인 맥락을 함께 하고 있다.
자연정복의 야심이 가득 찬 댐의 건설과 그 결과로서의 수몰 지구는 생명을 잠식하는 중독(中毒)의 물빛을 상징하지만, 누대 천년을 지켜온 용계리 은행나무의 청명한 그늘과 아름드리 잎사귀 줄기들은 광주항쟁과 시민혁명의 의로운 불꽃을 함축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작품 속에서 물질과 권력의 노예가 된 이들은 용계리 은행나무를 그저 이권과 관련된 치적(治績)의 산물로 여기지만, 진정으로 그 나무를 수호하려는 이들은 생명의식과 우주정신을 기반으로 보존작업에 돌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나무를 수호하려는 사람들은 돈방석에 앉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권력에 아부해 출세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대한민국 전 국토를 지켜주던 나무의 정체성과 상징적 울림, 그 막중한 존재감을 지켜주고 싶을 뿐인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의도는 순수하고 숭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