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는 해서 무엇하나, 자기를 망가뜨릴 뿐인데
사람마다 ‘공부’ 하면 떠올리는 것들이 다르다. 누구에게는 대학 진학을 위한 시험공부이고, 누구에게는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이며, 또 누구에게는 살벌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기계발이다. 그런데 이런 공부의 결과는 참담하다. 그 공부 경쟁에서 꼭대기를 차지하지 못하면 출세는커녕 생존조차 보장받지 못한다는 불안감에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심지어 이미 안정된 직장을 가진 이들조차 쉴 새 없이 공부와 자기계발에 내몰리고 있다. 그러나 이런 공부와 자기계발은 자기 착취에 다름 아니다.
이 생존주의 시대의 자기계발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압력과 ‘너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라’는 명령이 동시에 작동한다. 이 이중의 압력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지 못하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했는데도 성과를 내지 못한 이를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지 못한 이로 만든다. 자기 자신에게 충실했다는 증명서는 ‘성공’을 통해 받을 수 있다. 그러니 성공할 때까지 ‘노오력’할 수밖에 없다. 노오력으로 안 되면 노오오력하며 자기를 소진하거나, 패배자가 되는 것이 두려워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그러면, 그 경쟁에서 꼭대기를 차지한 이들은 과연 원하는 결과에 만족하고 있을까? 공부에서 늘 성과를 내는 ‘공부 잘하는 학생’은 실패와 좌절을 겪지 않은 것이 오히려 발목을 잡는다. 실패를 경험한 적이 없기에 좌절을 다루는 법을 모르는 것이다. 공부를 잘해 입학한 대학에서 상대평가 때문에 아무리 열심히 해도 C학점을 받을 때,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자기를 좋아하지 않을 때, 이들은 어쩔 줄 몰라한다. 한편, 소위 사회 지도층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국정 논단 사태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시피, 이 사회의 엘리트들은 공직자로서의 윤리도, 전문가로서의 자존심도 없다. 공부에서 남들보다 뛰어난 성과를 낸 이들이 절제와 겸손은 배우지 못한 것이다. 저자는 이처럼 성공 이데올로기에 포박된 공부, 자기계발이라는 이름으로 자기를 파괴하는 공부가 아니라 자기를 배려하고 돌보는 공부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