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항해시대 (세계사 ★ 역사 다이제스트 28) 시리즈..................
? 부록 속담풀이
역사는 간략하게.
내용은 정확하게
느낌은 진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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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속으로 -
8세기 이래 이슬람 지배하에 있던 이베리아 반도에서는 그리스도 교회에 의해 국토회복 운동이 추진되었고 그 과정에서 아라곤, 카스티야, 포르투갈의 여러 나라들이 형성되어 갔다. 포르투갈의 경우 12세기에 카스티야로부터 독립하였고, 15세기에는 조웅 1세(재위 1385 1433)하에 중앙집권적인 통일 국가로 성장했다. 이 왕권 밑에서 포르투갈의 해외 진출이 진행되었다. 국토 회복에서 아프리카 오지(奧地)에 있다고 믿었던 ‘성 요한의 나라’와의 제휴를 도모하려고 했던 이 계획은 그 속에 더 깊은 물질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향료를 중심으로 하는 동방 무역의 이익인 것이다. 헨리 항해왕 밑에서 이미 14세기 전반부터 아프리카 서해안의 탐험은 착착 추진되었으며, ‘성 요한의 나라’는 발견하지 못했지만 아프리카에서 가져온 부는 리스본을 윤택하게 하였으며 이와 함께 동양의 부를 구하는 ‘신항로’ 개발이 현실화되었다. 1488년 디아스는 희망봉에 도달하였으며, 이윽고 1498년 5월 20일 아라비아인의 뱃길 안내인에게 인도된 가마의 선단이 인도의 항구인 캘리컷에 드디어 자태를 나타내게 된 것이다. 그런데 당시 남해 무역에 활약하고 있던 것은 이슬람계 상인이었으며 인도 서해안의 그들 거류지에는 4000 가족 이상이 거주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독점적 이윤의 위협을 민감하게 느끼고 진출을 방해하려 하였다. 포르투갈의 인도 총독 알메이다는 1509년 마물루크 왕조의 이집트 해군을 인도 서해안 디우항(港) 밖에서 격파하였다. 알메이다를 계승한 인도 총독 알부케르크는 이듬해 1510년 고아를 무력으로 점령하고 그 곳을 동방 무역 지배의 근거지로 했으며, 이듬해에는 말라카를 점령하여 말라카 해협을 제압한 후에 향료 군도에 진출했다. 1517년에는 중국(明)에 진출하여 마카오를 점거하였고, 1543년에는 일본과도 통상을 열었다. 이렇게 해서 포르투갈은 16세기 전반에는 동방 무역을 독점해서 거대한 부를 얻었으며, 수도 리스본은 한때 세계 상업의 중심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