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째 현장을 누비는 인권운동가 박래군
그가 온몸으로 부딪힌 야만의 연대의 대한민국
한국 인권운동의 산 역사인 인권운동가 박래군의 첫번째 에세이. 우리 사회의 인권 현장을 생생하게 기록하는 동시에 그 속에서 인권운동가로서 느꼈던 보람과 어려움, 희망과 절망을 함께 담았다. 인권의 시각으로 바라본 용산 참사,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이전, 쌍용자동차 사태, 양지마을과 에바다 사건, 의문사 사건 등은 그 자체로 지난 30년간의 한국 인권운동사가 되었다.
박래군은 이 책에서 독재국가 시절의 청년기, 노동운동과 감옥생활, 동생 박래전의 분신 등 한 개인의 삶에 드리운 국가폭력과 그것에 끊임없이 비폭력, 불복종으로 저항하고 극복하는 과정을 절절하게 그려냈다. 한편 30년 가까이 인권운동가로 산다는 것에 대한 진솔한 소회를 밝히면서,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한 인권운동과 진보운동을 위한 진중한 고민을 후배들 그리고 다음 세대와 함께하고자 한다.
야만적인 국가와 권력에 맞서며 가난하고 약한 자들의 견고한 연대를 이끌어나가는 인권운동가 박래군의 분투기 . 그 속에서 뿜어져나오는 뜨거운 박동과 묵직한 감동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그대로 전달될 것이다.
본문 발췌
세상 사람들은 슬픈 것보다는 즐거운 것, 재미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나 슬프다, 그러니 같이 울어달라 하면 오히려 외면받더군요. 내가 슬플 때보다 즐거울 때 더 많은 사람들이 같이한다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달았습니다. 내가 악다구니 쓴다고 내 말을 귀담아듣지 않습니다. 즐겁게 함께할 수 있는 곳에 사람들이 옵니다. 가장 슬픈 현실에서도 함께 손잡고 기쁘게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머리말’ 중에서
내가 하는 수많은 일들은 누군가 그 일을 말하기 위해서 찾아오는 순간 시작된다. 나는 그 말을 제지할 방법을 알지 못한다. 들어야 한다. 선입견을 갖지 않은 채 얘기를 듣다보면 화를 내고 답답해하고 안타까워하면서 그 일을 들고 온 사람의 감정과 동일시된다. 감정의 이입, 동화라고나 할까. 어떻게 장애 아동들이 인권유린을 당하는 걸 외면할 수 있을까. 어떻게 정든 집과 마을을 빼앗기고 내몰리는 일을 모른 척할 수 있을까. 공권력에 의해서 조작된 사건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때로는 억울하게 죽기도 했는데 어떻게 침묵할 수 있을까. 그러다보면 나는 그 사건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어느새 그 가운데에 서서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해 부심하는 주체가 되어버린다. ─‘인권운동가로 산다는 것’ 중에서
서울에서 긴급하게 연락이 왔다. 경찰 차량이 떼를 지어 평택으로 향하고 있다는 정보였다. 마침 저녁 촛불행사도 마치고 해산 중이었는데 마을에 들이닥친 경찰은 무조건 사람들을 연행을 해갔다. 마을 골목마다 비명이 하늘을 찔렀다. 미란다 원칙 고지 같은 것은 없었다. 경찰을 피해 담을 넘고 집마다 불을 껐다. 여기저기서 끌려가면서 두들겨 맞는 소리가 들렸다. 공포. 1980년 광주가 이랬을까. 경찰의 군홧발소리가 잠잠해질 때까지 어둠 속에서 휴대폰 문자로만 연락하며 상황을 파악해갔다. 전국에서 상황을 듣고 궁금해했
지만 거기에 답할 수 없었다. ─‘그 마을이 점령되던 날’ 중에서
저는 이 재판 내내 법정에서 형의 감경이나 선처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저의 태도를 보고 개전의 정이 없다고 검찰은 질타해왔습니다. 왜 제가 반성해야 하는 건가요. 평화적인 방법으로 용산 참사에 항의하고, 용산 참사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의 편에 서고, 힘없고 가난한 철거민들의 입장에 선 게 죄라면, 저를 단죄하십시오. ─‘항소심 최후진술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