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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의 그늘
글쓴이
김형엽 저
출판사
신생(원양희)
출판일
2017년 7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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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분야소설/시/희곡
신비의 감각을 발견하는 서정의 편린

김형엽 시의 정서적 감응은 시적 화자의 눈에 온통 낡아 가는 것들, 죽어 가는 것들, 사라지는 것들이 포착되어 있는 것과 관련된다. 이들은 시의 정서적·사상적 깊이를 더해준다. 고향을 상상하는 시인의 장소 감각은 고향과 관련한 사물들에 주목함으로써 구체성을 지니게 된다. 시 ?삼천포?에서 “쥐치, 서대, 가자미, 낭태, 노래미”는 모두 ‘말라가는 것들’이자 “쪼글쪼글 어머니의 손을 닮아가는 것들”로, 이는 고향의 ‘저문 해변’과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제재들이다. 화자는 이처럼 소멸해가는 존재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고향의 장소성을 환기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아직도 내 몸 구석구석/ 방부제처럼 남아 있는 바다의 짠 내”를 확인함으로써 은근히 표출한다. 하지만 시인의 상상력은 여기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이 존재들은 표면적으로는 소멸되어가지만 시적 화자에 의해 ‘본성(本性)’이 드러날 때 다시금 생기 넘치는(“한 마리 싱싱한 넙치처럼 파닥이는”) 긍정성의 존재로 탈바꿈되기 때문이다. 사물을 바라보는 시적 화자의 이러한 전환적 인식은 시공간적 거리 감각이 낳은 결과다. 시인은 지금, 여기의 대상 사물의 현상만을 주목하여 묘사하는 것으로만 그치지 않고 과거, 거기(=‘삼천포’)를 이곳으로 불러와 사물과 현상에 새로운 인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사물의 가치 바꿈에서 시의 정서적 깊이가 더해지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비록 시인이 추구하는 세계가 현전(現前)하지 않는다 해도 지각 이전의 감각으로, 시각 이전에 청각으로 제 존재의 본래 모습은, 그리고 그에 대한 시인의 깨달음은 지속될 것이다. ‘소리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떠나간’ 것이기에 시인의 몸은 그에 대한 감관(感官)을 활짝 열어두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김형엽의 시편을 통해 일상성 속에서 포착되는 존재의 본래 감각을 어떻게 회복하고 삶의 생명성을 다시금 고양시킬 수 있는지를 언제든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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