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트만의 단편 소설 8편이 실려 있는 책이다.
red님 리뷰를 보고 마음에 들어서 읽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는 『곰스크로 가는 기차』와 『철학자와 일곱 곡의 모차르트 변주곡』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제대로 감정 이입을 하며 읽은 것은 표제작인 『곰스크로 가는 기차』.

곰스크, 그 멀고도 멋진 도시……. 언젠가 곰스크로 떠나리라는 것은, 내 성장기에 더 말할 것도 없이 자명한 사실이었다. 곰스크는 내 유일한 목표이자 운명이었다. 그곳에 가서야 비로소 내 삶은 새로 시작될 터였다. 그러나 당시에 곰스크에 걸었던 희망을 나는 거의 잊어버렸다. 곰스크로 가려 했던 이유조차도 이미 오래전에 희미해져 더이상 뚜렷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지만 곰스크를 향한 열망이 식은 것은 아니다. 다만 언젠가는 그 도시에 도착한다는 명백한 확신이 시들해진 것뿐이다.(p10)

여기서 나는 굵게 표시된 구절을 읽는 순간 나의 곰스크-캐나다 프린스에드워드섬-를 떠올렸다.
어린 시절 내가 즐겨보던 만화는 손에 꼽힐 정도였다.
영심이, 아기 공룡 둘리, 달려라 하니 정도.
그것도 열심히 챙겨보는 건 아니었고, TV를 켜서 하면 보는 게 고작이었다.
그랬던 내가 놀이터에서 놀다가도 경비실에 붙은 시계를 보고 집으로 가서 보았던 유일한 만화가 「빨간 머리 앤」이었다. 앤이 종영이 될 때 얼마나 안타까웠던지... 후속으로 방영되는 「베르샤유의 장미」에게 화가 날 정도였다. '저것만 아니었더라면 「빨간 머리 앤」을 계속 해줬을지도 몰라' 이러면서.

그러다 '앤'에 대한 애정이 어느 정도 잊혀질 때 쯤 다시 방학 특집으로 방영을 해줬었다. 그때 학원 가기 전에 얼마나 열심히 챙겨봤던지 TV 앞에 서있는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는 엄마의 눈길이 아직도 느껴진다. 그쯤에 빨간 머리 앤이 일본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이란 걸 알았고, 애니메이션과 그림이 똑같은 만화책을 도서대여점에서 빌려보았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은 감출 수가 없었는데, 고등학교에 갔더니 앤에 대한 광적인 팬인 친구가 있는거다. 그 친구 덕분에 '빨간 머리 앤' 카페, 프린스에드워드섬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프린스에드워드섬에 관련된 자료를 홍보관에 신청해서 받았던 기억이 난다(이건 어딨을까?^^;). 비슷한 시기에 앤에 대한 소설이 10권짜리로 나오면서 정말 정말 읽고 싶었는데, 기회가 되질 않아서 아직까지도 못 읽고 있다(어린 시절의 감동이 느껴지지 않을까봐 못 읽는 것도 이유 중의 하나다).

어쨌든 그렇게 나는 어른이 되면 꼭 '프린스에드워드섬'에 가리라 마음 먹었었는데,
어느 순간 내가 왜 캐나다에 대해 무한 사랑을 가지고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빨간 머리 앤' 100주년 기념 책과 도록(?)을 사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하고,
Anne of Green Gables 원서 8권을 질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덕분에 잊고 있었던 나의 곰스크를 떠올려서 기뻤는데
그것은 잠시뿐... 후폭풍이 만만찮다.
당장이라도 떠나지 않으면 주인공처럼 될 것만 같은 느낌에 불안하달까.
떠나야 할 이유가 하나라면 당장 배낭을 멜 수 없는 이유는 백가지가 넘는데 말이다.

아, 나의 프린스에드워드섬이여....!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잠재우고 이 책에 대해서만 얘기하자면,
「곰스크로 가는 기차」에 감정 이입을 하고 조금은 불편한 마음으로
「배는 북서쪽으로」를 읽으면서 작가가 뭐라는지 알쏭달쏭했다.
바로 다음에 접한 「철학자와 일곱 곡의 모차르트 변주곡」을 읽으면서
'그래, 역시 화가처럼 내 앞에 펼쳐진 인생을 즐길 줄 알아야 해.' 라며
조금씩 무료해지고 있는 내 일상을 바꿔보고자는 마음이 들었다.
이후의 단편들은 「배는 북서쪽으로」처럼 이렇다 할 결말을 내주지 않는 것 같아
답답한 마음이었는데 왠지 모를 이 작가의 매력에 점점 빠지게 되었다.

『곰스크로 가는 기차』는 몇 년 전에 단편 드라마와 연극으로도 나왔다는데
어둠의 경로로는 드라마를 찾을 수가 없어 아쉽다.
방송국 홈피에는 있는지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