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실은 조선 시대 초기에 관기의 아들로 태어나 동래현의 관노가 되었지만, 재주가 뛰어난 사람을 신분에 상관없이 뽑아 나라를 위해 일하게 하는 ‘도천법’에 따라 상경했다. 궁중에서 필요한 온갖 물건들을 만드는 공조에서 일하게 된 장영실은 천문 관측기구를 만들고자 하는 세종의 뜻에 따라 중국에 유학을 다녀왔다. 그 뒤 장영실은 농사짓기 알맞은 때를 정확히 알기 위해 필요한 경점지기, 간의, 혼천의, 자격루, 앙부일구 등 다양한 종류의 천문 관측기구와 시계를 비롯해 백성들의 생활을 더욱더 편리하게 해 줄 물건들을 만들어 냈다. 세종에게 인정받으며 승승장구하던 장영실은 자신이 제작을 감독했던 가마가 부서지는 사고를 겪은 뒤 파직되어 행적이 묘연해졌다.
부록에서는 장영실이 만든 관측기구들을 사진 자료와 함께 소개하고, 해시계와 물시계의 원리를 설명합니다. 또 오늘날과는 다른 조선 시대의 시간의 단위와 이름에 대해서도 살펴본다. 측우기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에 대해서도 알아봅니다. 장영실이 과학 기술자로서 일할 수 있도록 도와준 세종, 장영실과 함께 연구한 이천, 김돈, 이순지, 김담, 김빈 등 동료 과학자들도 만나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