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외'의 삶을 택한 나,
스스로 '얼굴'을 없애버린 사람의 이야기
나의 존재는 언제나 불안하고 불확실하고 불투명하다. 이러한 내가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간다는 것, 아무렇지도 않게 그들 속에서 나를 확정짓는다는 것은 어렵고 두려운 일이다. 아베 고보는 일본의 대표적인 소설가로 초현실주의적인 수법을 통해 인간 소외, 정체성 상실 등 현대 사회의 문제를 심도 있게 파고든 실존주의적 작품을 많이 남겼다.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오에 겐자부로는 “아베 고보가 살아 있었다면 노벨문학상은 그의 차지일 것이다”라고 말한 적 있다. 『상자인간』은 그가 1973년에 쓴 작품으로, 예전에 카메라맨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한 남자가 골판지 상자 안에서 거주하며 엮어내는 이야기다.
잘 짜여지고 정돈된 서술이 아니라 낙서처럼, 생각난 것만 쓰고 기억나지 않은 것은 바로 포기해버린 것처럼, 그리고 누군가의 글과 내 글을 혼동해 읽어내려간 듯 쓰여진 이 작품은 형식에서마저 등장인물들의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드러내고 있다. 보는 주체와 보이는 대상이 서로의 자리를 자유롭게 오가기도 하고 가짜와 진짜가 갈등하는 듯 공존하기도 한다. 상자 안에서 내다본 바깥의 광경이 아니라 모두 상자 안쪽에 기록된 낙서가 된다. 그러므로 어떤 소속도 거부하는 상자인간은 현대 사회에서 끊임없이 탈락의 위협을 느끼는 현대인들의 어딘가에 소속되었다고 확신할 수 없는 불안감을 고도의 문학적 장치로 풀어낸 아베 고보의 실험작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