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그 비밀스러운 접촉에 대한 이야기들
백발의 짧은 머리를 한 철학자 최진석은 대개 청바지에 반팔 티셔츠를 걸치고 강연에 나선다. 노자와 장자를 ‘현대의 철학자’로 우리 시대에 소환하며, 이념과 신념에 포박된 무거운 ‘사명들’에 직격탄을 날린다. 일상의 좌표를 명사에서 동사로 전환할 것을 귀띔한다. 곧 내가 ‘바라는 일’ 대신에 ‘바람직한 일’을, 내가 ‘하고 싶은 일’ 대신에 ‘해야 할 일’을 하는 데 전념해온 우리의 맨 얼굴을 응시하게 만든다.
『경계에 흐르다』는 ‘경계의 철학자’ 최진석의 첫 산문집이다. 그가 경계의 흐름 속으로 비집고 스며들었던 자기 삶과 사유의 내밀한 이야기들을 엮었다. 거칠고 시큰둥했던 유년과 청소년 시절 그가 체득한 두려움과 갈망에 대한 이야기, 철학 공부의 시작과 ‘이상한 눈빛’에 대한 이야기, 칸트에서 장자로 시선을 옮기게 한 무료함에 대한 이야기, 장자와 적대관계로 지낸 이야기 등 그가 불안하고 비밀스러운 경계에서 빚어낸 무늬를 보여준다.
“시 아닌 곳으로 자폐하여 시를 멀리하고 스스로를 맷돌 삼아 거기에다 자신을 갈고 또 갈다 보면 몇 방울의 피가 엉겨 붙는다. 그 피들을 긁어모아 놓으니, 거기에 시라는 이름이 다가와 걸릴 뿐이다. 설령 시가 아니어도 된다고 포기한 채, 자신을 학대하다 보면 오히려 빛나는 시가 태어난다. 시는 쓰는 것이 아니라 토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 「시가 잘 써지지 않는 까닭」에서
“빗방울은 그 이름을 받는 순간 낙하의 운명을 실현한다. 빗방울이 낙하하며 겪는 속도는 그가 세상을 읽는 속도와 맞먹는다. 낙하는 빗방울에게 하나의 ‘읽기’다. 빗방울은 운명처럼 대지의 어느 한쪽을 지정받아 송곳처럼 꽂히며 자신의 시선을 대지의 다양한 모습들에 구겨 넣는다.” ― 「읽기와 쓰기, 그 부단한 들락거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