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론 7정판을 작년 여름에 출간하고 나서 1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그간의 형사‘입법’ 동향을 본서에 반영하였는데, 이곳에서 특기할 사항은 없다. 그러나 형사‘사법’, 무엇보다도 대법원판결에 있어서는 물줄기의 방향이 바뀌는 것을 감지한다. 종래 저자는 대법원 판결문을 읽으면서 무언가 미진한 것, 두루뭉술한 것, 끝내는 답답한 느낌이 드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제 대법원은 판결을 근거지우는 법리를 보다 더 정치(精緻)하게, 선명하게, 그래서 설득력 있게 전개하고자, 형사사건을 다루는 자세를 가다듬은 것이 아닌가 한다. ‘바라는 것은 잘도 믿는다’라는 말이 판례를 검토하고 있는 저자에게 들어맞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형사사법에 상술한 변화가 있다면, 정말 박수칠 만한 일이다.
몇몇 예를 들어보기로 한다. 사기죄에 있어서 피기망자의 처분의사 내지 처분행위의 유무를 쟁점으로 하여 2017. 2. 16.에 선고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2016 도 13362)은 다수의견과 반대의견 사이에 치열한 법리 공방(攻防)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위탁자의 재물을 관리하고 있는 수탁자가 그 재물을 유용한 경우에 위탁자인 재물 소유자의 이익을 위하여 처분하였다면 불법영득의사가 부정되어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판결도 거듭 선고되고 있다(대판 2016. 8. 30, 2013 도 658; 2017. 2. 15, 2013 도 14777).
구체적 타당성을 기하고자 형사사건 간의 미묘한 차이를 짚어낸 것으로 여겨진다. 이른바 ‘차용사기’에 있어서 채무불이행과 기망 사이의 변별력을 높이는 판결도 거듭 선고되고 있다(대판 2016. 4. 28, 2012 도 14516; 2016. 6. 9, 2015 도 18555). 배임수·증재죄에 있어서 수재자가 받은 재물을 증재자에게 반환한 경우에 그 재물의 몰수·추징의 상대방이 증재자임을 분명하게 밝히는 판결(대판 2017. 4. 7, 2016 도 18104)도 있다. 이 모두가 우리나라의 형사사법이 한 단계 올라섰음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