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동시대’를 살았던 한 노동자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
보통 사람 배달호.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중학교조차 졸업하지 못하고 공장으로 떠밀려야 했던 시절. 그래서 대기업, 대공장에 첫 출근하던 그날, 첫눈을 맞은 것처럼 설렜던 그. 1987년, 그 눈부시던 여름, 바로 당신과 당신의 누이와 당신의 아버지ㆍ어머니와 함께,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공장에서 노조를, 작업장에서 인간다운 대우를 외쳤던 그.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신자유주의 무한 경쟁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업과 국가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며, 평생을 몸 받쳐 일했던 일터에서 그만 나가 달라고 요구하는 세상에 맞서야 했던 그. 그러다 결국은 무참히 파괴된 노조와 일터와 가정을 뒤로 하고 어느 해 겨울 새벽, 외로이 분신으로 세상을 등질 수밖에 없었던 그. 보통사람 배달호.
이 책은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인간들의 삶이 신자유주의의 격랑에 휩쓸려 어떻게 파괴되어 가는지를 보여 주기 위해 쓰였다. 르포 작가 김순천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모든 대기업의 노조에 대한 탄압과 그로 인한 한 평범한 노동자의 비극적 서사를 써내려 가면서도, 차갑고 냉정한 세상에서 ‘인간답게 살고픈 꿈’과 동료들에 대한 따뜻한 온기를 잃지 않았던 한 개인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을 잃지 않는다. 공식적인 기록은 말할 것도 없고 일기조차 남아 있지 않은 지극히 평범했던 한 인간의 삶을 되살려 내기 위해 작가는 주변인들의 기억들을 끼워 맞추며 당시 대공장 노동자들의 일상사와 그 속에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인간의 삶을 되살려 내고자 했다.
이런 노력은 80년대 당시 마산ㆍ창원 지역 노동자들의 일상사와 가정생활, 공장 생활에 대한 생생한 묘사에서 잘 드러난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한 평범한 인간이 무엇 때문에 노조를 하게 되고, 무엇 때문에 그 일을 계속하거나 하지 못하게 되는지, 이 땅에서 노조를 한다는 것이 무엇인가도 잘 보여 준다. 뿐만 아니라 열사나 투사가 아닌 평범한 ‘인간’의 고뇌와 꿈을 담고자 했던 작가의 노력은 한 노동자의 삶을 우리 시대 어디나 존재할 법한 인간의 보편적 삶으로 형상화하면서 노동 문학의 지평을 한층 넓혀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