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사유하는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이 던지는 폭력에 대한 삐딱한 성찰
슬로베니아 출신 ‘괴물’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의 이론적 사유뿐만 아니라 폭력에 대한 다양한 성찰을 두루 아우르면서 우리에게 폭력에 대한 새로운 사유의 기폭제가 될 책이다. 저자는 이 책 전체를 관류하는 폭력이란 주제를 이해하기 위해서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결국은 눈에 보이는 ‘주관적 폭력’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객관적 폭력’, 즉 ‘상징적 폭력(symbolic violence)’과 ‘구조적 폭력(systemic violence)’이 중요하며, 거기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 저자는 주관적 폭력과 싸우는 척 하지만 실제로는 구조적 폭력의 가해자 역할을 하는 자들이 보여주는 위선을 폭로한다. 특히 구조적 폭력은 경제체계와 정치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 나타나는 결과라는 점에서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상황에서는, 즉각 참여하고자 하는 충동에 저항하는 것, 끈기 있고 비판적인 분석을 사용하여 ‘일단 기다리면서 두고 보는’ 것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진정으로 실제적인 일일 때도 있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지젝이 이 때 염두에 두고 있는 건, 바틀비적 정치학이다. 자신의 상사가 시키는 모든 일에 대해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하고 싶습니다(I would prefer not to)”[‘I would not prefer to’가 아니라] 라고 답했던, 끔찍할 정도로 수동적인, 그 바틀비 말이다. 그와 같은 극단의 경지가 필요했던 이유는 명백하다. 그 정도의 극단까지 가봐야, 그리고 그 정도 극단을 상상할 수 있어야, 지금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또 우리가 어떤 교착상태에 놓여 있는지를 분명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 폭력이 무엇인지를 묻는 우리들에게 중요한 힌트가 되어줄 것이다.
이 책의 구성은 부제가 설명하는 바와 같이, 폭력이라는 주제를 우회하는 6가지의 이야기로 이어져 있다. 주관적 폭력과 객관적 폭력의 차이를 설명한 1장에 이어 2장에서 저자는 폭력의 궁극적 원인이 공포에 있다고, 이웃에 대한 두려움에 있다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리고 바로 그 공포가 언어 자체에 내재된 폭력의 기초를 이루게 된다고 한다. 이어서 테러리즘이 가진 원한이라는 감정을 바탕으로 우리사회의 ‘정의란 무엇인지’를 짚고 넘어간다. 이 때 원한은 목표를 성취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목표를 이루는 데 장애물이 될 법한 것들을 어떻게 하면 제거할 수 있을지에 더 큰 관심을 쏟아 붓는 도착이다. 그런 면에서 “가장 선한 자들은 모든 신념을 잃고, 반면 가장 악한 자들은 격정에 차 있다”(129)는 예이츠의 시구는 사태에 대한 적확한 묘사다. 이어서 관용적 이성의 이율배반을 설명하고, 우리 사회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로서의 관용에 명백한 한계가 있음을 보인다. 마지막으로 발터 벤야민의 ‘신적 폭력’ 개념이 가진 해방적 면모를 드러내 보인다.
『폭력이란 무엇인가』는 지금까지 지젝의 이론적 사유뿐만 아니라 폭력에 대한 다양한 철학적 성찰들을 두루 아우르면서 폭력에 대한 새로운 사유를 촉발하도록 하는 문제적 저작이다. 우리는 폭력에 대한 사유를 지젝과 더불어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폭력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에 대한 답변이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