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한국 미술은 새로운 서양 미술 매체와 기법, 양식, 도상 그리고 미학 유입으로 전통과 단절된 것처럼 이야기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서양 근대 사상 가운데 하나인 민족주의가 문화의 기원을 영토에 연계시키는 민족주의적 문화관으로 전개되었고, 전통에 대한 담론은 ‘조선색’, ‘향토색’이라는 말로 활발하게 펼쳐졌다.
정체성 문제가 중요하게 거론되는 현재에도 근대에 발단한 전통 집착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해방 이후 한국 미술계가 서양 미술에 전면적으로 동화되었지만 전통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전통과의 연계를 바탕으로 유지된 동양화는 더 이상 조선시대에 누리던 위세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1920년대 초부터 새로움과 순간성으로 특징지어진 ‘근대성’의 기준으로 볼 때 전통에 천착하는 동양화는 ‘시대정신이 결여됐다’는 비판을 받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전통은 더 이상 고정된 것에 머물지 않고 시의적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특히 최근에는 한국 미술계가 전통과 현대의 융합이라는 화두를 내세우면서 전통의 의미가 지필묵이라는 재료 기법이나 선(線)적인 미 같은 표현 형식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 개념, 미적 태도와 향유 같은 개념 틀에서 파악되고 있다.
정형민의 연구는 한국 근대 미술에서 모더니즘 수용, 아카데미즘의 정의, 누드화 전개, 일본 화단과의 관계 등을 새로운 각도에서 분석하게 하는 실마리가 되면서 앞으로 연구가 개진될 무한한 확장 가능성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