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이 난무하는 시대에 오래된 사물이 말을 건네다,
독일 유학 중 수집한 예술소품들에서 철학을 발견하는 책
물건이 다 떨어져서 사는 시대는 지났다. 우리는 매일 눈앞에 보이는 새 것, 신상품, 그리고 좀 더 번듯하고 화려하며 남의 손이 타지 않았던 물건에 집착한다. 마치 그 물건이 나를 입증하는 듯 나 역시 그 물건에게 어느 정도 인생을 저당 잡혔지만 어쩔 수 없는 기분으로 말이다. 자본주의의 테두리 안, 누가 헛된 소비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렇게 더 좋은 것만 보고 달려가자는 무언의 외침이 들리는 시기에 저자 민병일은 출판사 주간으로 활동하다가 10여년 전 예술을 공부하기 위해 뒤늦은 독일 유학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독일 유학생활 틈틈이 벼룩시장이나 앤티크 시장을 찾아다니며 고서, 그림, 램프, LP 음반, 습도계, 편지 개봉칼, 무쇠촛대, 타자기, 펜촉, 진공관 라디오 등 오래된 사물들을 모은다. 이렇게 습관과 재미로 수집했던 오래된 사물들을 통해 예술에 대한 사랑을 자연스레 키워나간다.
그리고 귀국한 뒤 대학에서 예술을 가르치게 된 저자는 수년 동안 갈무리해온 수집품에 얽힌 예술과 추억의 이야기를 이제 독자에게 펼쳐 보이려 책 속에 담았다. 마치 곧 버려질 것 같은 오래된 사물들은 저자의 따스한 시선과 글을 통해 ‘초현실적인 예술의 오브제’ ‘삶 속의 예술작품’으로 규정된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유행한 아르누보가 독일에서 유겐트슈틸(Jugendstil) 양식으로 변모된 모습을 ‘유겐트슈틸 램프’나 ‘유겐트슈틸 서체’로 보여주기도 하고, LP판 이야기를 하면서 반세기 동안 음반 디자인이 변모해온 과정을 실제 음반사진을 통해 자세히 보여주기도 한다.(「유겐트슈틸 램프」와 「검정색의 순결한 소리, LP 원반」)
그 밖에도 편지 개봉칼, 무쇠촛대, 독일 고서를 전문가의 눈으로 바라보며 오랜 동안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디자인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다. 새삼 우리는 버려진 사물에 대한 되돌아보기와 예술은 그리 먼 곳에 있지 않다는 당연하고도 분명한 진리를 만나게 된다. 또 한 남자의 독일 유학담과 함께 예술을 사랑하는 학자의 사유가 담긴 미술, 디자인, 문학, 음악 이야기를 총 29편의 꼭지로 풀어 놓고 있어 신선하게 읽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