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풍노도의 시기를 건너와 새내기로 선 시인이 세상에 보내는 연민과 사랑
이지호 시인은 「돼지들」 외 9편으로 2011년 창비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한 이래 꾸준히 시작 활동을 펼쳐 왔다. 등단작 9편에 대해 “현실을 아우르는 탄탄한 서정성이 큰 장점”이며, “전통적인 서정의 운행을 하면서도 현실에 대한 팽팽한 인식을 놓지 않는다”는 평을 받았다. “운문과 산문을 적절히 교직하여 리듬을 만들어내는 능력 역시” 돋보였고, 작품마다 골고루 수준 이상의 성취를 보였다는 점도 부각되었다.
요즘 시단의 흐름에서 불혹을 훌쩍 넘긴 나이에 첫 시집을 내는 일은 다소 쑥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읽어 보면 질풍노도의 시기를 건너와 세상의 보편적 가치를 개성적 감각으로 살피는 진경을 만날 수 있다. 시의 전통적 가치를 이으면서 신인다운 패기와 과감한 표현 등은 작품 전체에 사이다와 같은 청량감을 선사한다.
모두 53편의 이번 시집은 등단 이후의 시작 활동의 결정체이다. 시인의 따뜻한 마음에서 발원한 시어는 우리의 시선을 끌기 충분하다. 예를 들면 가로등 아래서 폐지를 줍는 노인(「이팝나무 교지」), 살처분으로 산처럼 묻히는 돼지들(「돼지들」), 조류 독감에 살아서 실려 나가지 못하는 병아리(「조류 독감」), 유물과 동물 뼈, 어린아이 뼈가 발견된 통일신라시대 우물(「보석함」), 시집간 언니(「윤달」), “폐타이어를 잘라 바퀴를 고치던 아버지”(「고무줄」), “건물을 오르고 남겨진 그림자가 만든 계단”(「검은 계단」) 등 실로 다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