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조선을 뒤흔든 ‘벽癖광狂나懶치痴오傲’의 세계
우리 역사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매력적인 시기로 분류되는 18세기의 문화 인물을 발굴 조명하는 책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문화 인물은 이백여 년 전, 남들은 뭐라 하든지 눈치 보지 않고 자기가 잘할 수 있고 잘하고 싶은 분야를 선택하여 드높은 새 경지를 개척한 중세의 사람들이다. 이들은 우리가 흔히 보고 배운 ‘위대한 인물의 계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전혀 새로운 캐릭터들이다. 그 시대가 숭상하고 선호했던 것과는 딴판인 직업이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들을 전문가 또는 프로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마니아나 기인(奇人)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하지만 18세기에는 이 같은 인간을 가리키는 적절한 말이 없었다. 벽(癖, 고질병자), 광(狂, 미치광이), 나(懶, 게으름뱅이), 치(痴, 바보), 오(傲, 오만한 자)라는 표현이 그들을 따라다녔을 뿐이다. 고질병을 못 고치고, 어딘가에 미쳐 있으며, 게으르고 바보 같으며 오만한 자들, 그들이 바로 18세기 조선을 뒤흔든 ‘벽광나치오’들이었다.
자부심과 자의식은 그들에게 당연한 것이었다. 기술자 최천약은 “칼을 잡으면 무슨 물건이든지 그대로 새기지 못하는 것이 없다”며 만능의 조각 솜씨를 자부했고, 책장수 조신선은 “천하의 책이란 책은 모두 내 책이지요. 책을 아는 천하사람 가운데 나보다 나은 사람이 없을 게요”라며 떠벌렸다. 광기와 오기는 종이 한 장 차이다. 최북은 원치 않는 그림을 그리느니 차라리 제 눈을 송곳으로 찔렀고, 김성기는 원치 않는 연주를 하지 않으려고 권력자를 향해 악기를 던져 부숴버렸다.
최북이나 정철조, 이단전의 이야기에서 보듯이 ‘벽광나치오’들의 치열한 추구와 열정적 삶은 때로슴 자기 몸과 인생을 갉아먹는다. 그때나 지금이나 처세의 달인들은 앞서 나가는 자를 보면 거꾸러뜨리고 싶어한다. 현실의 냉혹함은 ‘벽광나치오’들에게 좌절과 시련을 안기고 그래서 그들은 승승장구하기보다는 곧잘 무너진다. 감당하기 힘든 광기를 종종 그들은 술로 풀었다. 폭음은 오만한 그들의 끼니였고, 그런 그들은 남들 눈에 미친놈, 오만한 자, 게다가 술꾼으로 비치기 일쑤였다. 그러나 균형이 아니라 불균형이, 평범함이 아니라 기이함이 삶과 사회를 역동적으로 이끄는 힘임을 그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