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여성이 자신의 꿈을 실현하며 살아가기에는 인습적 굴레가 도처에 자리하여 여성 스스로 타고난 재능을 발현하며 살기에는 현실적인 제약이 많았다. 하지만 제한적인 시대에 자신의 가슴 속에 꿈틀거리는 꿈을 희석시키지 않고 실현하기 위해 자신을 옭아매던 사슬의 고리를 끊고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해 노력해 온 여성들이 있었다. 가보지 않은 낯선 공간을 동경하고 그곳을 밟아 보려는 이들의 오랜 소망은 가슴에 그리던 곳을 실제로 가보는 일은 삶의 질서를 넘어서는 또 다른 자기 발견의 과정으로 이어졌다. 여성들의 여행이 금기시된 시대에 김금원은 용기 있게 자신이 머물고 있던 울타리 바깥으로 나와 새로운 풍경과 맞닥뜨리며 몸으로 세상을 호흡하는 일에 적극적이었다.

몰락한 양반의 서녀였던 김금원은 가진 게 많지 않았지만 자신을 둘러싼 삶의 영역을 벗어나 금지된 것을 어렵게 행하여서라도 새로운 세상과 만나려는 열망이 컸다. 금원은 금강산 여행을 통해 자신의 운명과 맞부딪칠 힘을 구하고 싶었다.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위리안치와 다름없는 형벌을 받으며 평생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음을 밝힌 뒤 바깥세상을 본 여인들을 정신적 사표로 삼았다. 어릴 때부터 그녀는 영특해 아버지의 책 읽는 소리를 어깨너머로 들어 스스로 글을 깨치고 배워 세상에 대한 지식과 호기심을 키워 나갔다. 기생 출신인 어머니는 딸의 글공부를 막지 않았으며 오히려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게 지지하고 격려하는 조력자로 자리했다. 그리하여 어머니는 딸이 입을 바지저고리와 두루마기를 손수 지어 금원이 넓은 세상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여행을 응원하며 그녀의 가는 길에 무사 안녕을 기원했다.

금원의 지적 호기심과 재주에 각별한 애정으로 편지를 주고받았던 고모 기각은 자신은 닫힌 세계에서 강호를 꿈꾸는 것으로 만족하고 지내지만 조카 금원만큼은 자신의 꿈을 적극적으로 펼쳐 가기를 바랐다. 그 후 금원은 겸재 정선이 그린 금강산 그림을 우연히 보고는 그곳을 찾아 출가하지 않은 여자가 집밖으로 나서는 일의 벽을 허물고 남장을 한 채 길을 나섰다.

‘세상에 대딛는 이 걸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리라.’

높은 하늘로 비상하는 새처럼 자유로운 영혼으로 길을 나선 금원은 충청도 제천군의 의림지를 돌아보는 것으로 여정을 시작하였다. 감성이 예민하였던 그녀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 어느 것 하나 소홀히 대하지 않고 가슴으로 느끼며 꿈을 좇는 여정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시로 읊어지고 그 내용을 <<호동서락기>>에 담았다. 선험적인 일을 진실로 받아들이며 안주하는 일을 경계하고, 그동안 책을 읽으며 풀리지 않았던 의문을 경험으로 확인해 가는 일은 그녀에게 또 하나의 보람으로 자리했다.

단양팔경을 돌아 금강산 만폭동에 이르러 명필 양사언이 이곳을 금강산에서 으뜸가는 골짜기라고 새겼을 정도로 웅장한 위용을 드러냈다. 양사언 어머니는 아들들을 적자(嫡子)로 키워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니 신분차별의 폐단은 곳곳에 자리하여 해당하는 이의 꿈을 펼치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을 제거해 주길 바라는 모정(母情)이 내재해 있었다. 관동팔경을 돌아 해금강을 지나 큰 세상을 만나는 길 위에 한 나라의 임금이 살고 있는 서울은 평생 한 번쯤은 가보고 싶은 곳인데다 효명 세자를 둘러싼 사건에 대한 궁금증이 더 강하게 그녀 마음을 끌었다. 성곽 40리 길을 걸으며 자신의 삶의 자리는 어디일지 생각할 때마다 막막함이 더했다. 하지만 본질적인 자아의 모습으로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야 할 때가 머지않았음을 알아차린 금원은 기생의 신분으로 다시 세상 속으로 나가기로 결심했다.

금앵이라는 기적(妓籍)을 얻은 금원은 주연이 있을 때마다 생생한 여행담을 담은 시를 읊으며 선비들의 감탄을 받았고, 양반들의 시모임에도 초대되어 그들과 교류하며 자신의 기량을 닦아 나갔다. 이 중 시를 주고받으며 부부의 연을 맺어 김덕희의 소실로 그를 지아비로 존중하였을 뿐, 금원은 가문에 종속되기보다는 그녀 스스로 당당한 인간으로 자라하길 바랐다. 금원이 어린 시절 비단 마당을 그리워하며 삼호정에 머물던 때 시적 재능이 뛰어난 벗들과 정기적인 시모임을 통해 다양한 시세계를 열어 갔다. 외로운 처지에 각자의 재주와 삶을 인정하며 자신들만의 자리에서 시를 맘껏 짓고 노래하는 날이면 서로의 시를 평하고 격려하며 삼호정의 다섯 시인들은 서로를 키워 나가는 발판으로 삼았다.

시대적 제약이 많았던 시절 글을 통해 마음의 자유를 얻은 금원은 책을 통해 넓은 세상을 만나고 또 다른 세상을 호흡하기 위해 열네 살 어린 나이에 의림지를 돌아보고 금강산과 동해, 서울로 난 길을 따라 걸었다. 가슴 속에 품어 온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해 길을 나선 금원은 안온(安穩)한 일상의 틀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와 경험한 지나 온 삶의 여정을 기록으로 남겨 자신이 책을 통해 꿈을 키웠던 것처럼 후대에 사람들이 꿈을 키워갈 수 있게 배려했다. 20년 넘게 간직해 온 기록장을 면밀히 살펴 1850년 <<호동서락기>>를 완성한 것은 옳은 선택을 따르려는 그녀의 소신에서 발로된 것이었다. 시대의 통념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관습의 벽에 부딪히며 도전하여 자신의 꿈을 이뤄간 그녀의 영혼은 시대의 엄격한 규제도 비껴갈 만큼 용기 있는 자유인의 풍모를 지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