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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국공신 황희석 장군과 평해황씨 양무공파
글쓴이
김성태 저
출판사
비천당
출판일
2017년 9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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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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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태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및 동 대학원에서 학사, 석사,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2000년 ‘삼국시대 무기체제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성균관대학교 박물관 연구원을 시작으로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1990-1995) 경기도박물관 고고미술부장(1997-1999) 인하대 겸임교수(1999-2009)를 역임했다.현재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연구센터에서 수석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아주대학교 사학과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신석기혁명과 도시혁명(주류성, 2013)」, 「고고학 레시피(백산자료원, 2013)」, 「고고학 책 뷔페(백산자료원, 2014)」, 「익화군 김인찬(백산자료원, 2015)」, 「야만사회의 섹스과 억압(비천당, 2016)」 등을 공역, 공저, 편저하였다.

책 소개

분야역사
양무공(襄武公) 황희석(黃希碩) 장군은 이성계와 함께 조선 개국의 길을 개척한 인물이다. 그는 이성계의 죽마고우이자 지음지교였으며 고굉지신이었다. 이성계와 같은 고향인 함경도 영흥에서 태어나, 이성계가 1361년 청년 무장으로 참전할 때부터 휘하병을 통솔하여, 이성계의 백전백승을 도왔다. 홍건적 및 왜구 토벌, 위화도회군을 비롯한 이성계의 위업에는 늘 그가 함께 했다.

특히 이성계가 해주에서 사냥하다 부상을 당하자, 정몽주 파가 이성계 세력을 해치고자 하였는데, 이런 절체절명의 순간에, 그는 훈련된 정예군으로 이성계의 신변을 보호하고, 그들의 저의를 사전에 꺾음으로써 이성계 세력을 온건히 지켜낼 수 있었다. 또한 정몽주가 격살을 당한 위급한 상황에서 이성계는 그를 불러 공양왕에게 나아가 보고하고 수습하도록 했다. 이런 공훈으로 그는 개국공신에 녹훈되었으며, 평해군(平海君)에 봉군되었다. 그리고 ‘양무(襄武)’란 시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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