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고전비극의 정수로 금지된 정념에 사로잡힌 페드르가 자신을 단죄하는, 이성과 정념의 절묘한 이중주를 12음절 시구 알렉상드랭에 담은 한 편의 완벽한 극시다. 극에서 페드르는 이폴리트에 대한 사랑을 세 번에 걸쳐서 고백하는데, 처음 유모 에논에게(1막 3장), 이어서 정념의 대상인 이폴리트에게(2막 5장), 끝으로 남편 테제에게(5막 7장) 말한다. 고백을 통해 엄중한 현실의 질서에 들게 된 정념의 언어는 점차 그녀의 죄를 가중시키며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만듦으로써 그녀를 죽음으로 이끈다. 신화적 배경이 살아 숨 쉬는 극의 공간 속에서 언어는 문자적 의미와 비유적 의미라는 이중의 의미를 갖는다. 음독에 의한 페드르의 느린 죽음은 “사자의 세계로 천천히 내려가는” 것이라고 우회적으로 표현되며, 이는 비유인 동시에 문자 그대로의 신화적 현실을 반영하여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