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데뷔 이래 20년이 넘는 시작 활동을 해왔음에도 그사이 펴낸 시집이 세 권에 불과했던 이홍섭 시인의 네 번째 시집. 『가도 가도 서쪽인 당신』이 출간된지 6년 만에 나온 신작이지만, 시인은 늘 그랬듯 우리로 하여금 너무나 당연하고 익숙해서 돌보지 않았던 어떤 평범함에서부터 비롯된 정갈하고 단정한 이미지와 단상들을 펼쳐놓는다. 그리고 이런 여리고 연한 언어들은 독자에게 오히려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간다.
이 시집의 제목이자, 가장 중요한 연작인 「터미널」은 모두 아홉 편이 실려 있다. 강릉고속버스터미널 기역 자 모퉁이에서 아이를 업고 모퉁이가 닳도록 오가며 울음을 참는 앳된 여인(「터미널2」), 한때 머물렀던 터미널인 어머니의 자궁이 들어내졌던 날(「터미널3」), 터미널에서 이제 떠나는 부처가 제자 아난다에게 하는 이야기(「터미널9」) 등 호흡을 잠시 빼앗는 근원적 단상들이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