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호의 시집 『라이터 좀 빌립시다』에서 55편의 시가 빠짐없이 투과해나가는 구멍 하나가 있다면 바로 "쓰다"라는 말일 것이다. 시인은 글을 쓰는 자인 동시에 몸을 쓰는 자이기도 하여 저만큼 앞서 몸을 던진 뒤 그만큼 글로 뒤좇아보기도 하고 또 반대로 저만큼 앞서 글을 던진 뒤 그만큼 몸으로 뒤좇아보기도 한다. 몸과 글, 글과 몸, 이 둘 가운데 어느 무게가 상대가 앉은 시소를 가라앉힐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서로에게 기울다 말다 하는 반복 속에 저도 모르게 스미는 각도가 있다면 아마 시라는 종류의 이름일 것이다. 시집을 다 읽고 났을 때 귀가 먹먹하면서 묘하게 슬픔이 인다면, 그 안개에게 먹힌 것 같은 답답한 심정에 갇혀버린다면, 우리는 이현호 시인이 의도한 적 없지만 의도치 않게 쳐둔 그물망에 걸려든 셈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