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루과이 출신 망명 작가, 라틴아메리카 붐 세대의 대표적인 여성 작가 크리스티나 페리 로시. 단편집 『금지된 정열』은 국내에 소개되는 그의 두번째 책이다. 페리 로시를 읽는 건 16세기부터 계속되어온 고난의 땅에 발 딛는 일이다. 제국주의 국가에 수탈된 경제, 군부독재로 자유와 권리가 박탈된 역사, 부정부패가 판치는 사회,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온 평범한 사람들의 존재방식과 마주하는 순간, 세계에 대한 이해는 다른 지평으로 들어선다.
책에는 평생 자신의 어깨로 우주를 떠받치느라 남들과 달리 영화관 한 번 못 가본 남자('아틀라스'), 여행하기로 마음먹었으나 여행지를 정하는 데 육 개월, 현지 언어를 배우는 데 삼 년을 보낸 뒤에도 결국 떠나지 못하는 남자('여행'), 단 한 번의 사소한 친절을 잊지 않고 은혜를 갚기 위해 자식들까지 그 의무를 지게 하는 남자('감사는 끝이 없다'), 태어나서 한 번도 꿈을 꿔본 적 없어 안달하는 여자('문턱'), 이미 죽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낯선 도시를 헤매는 남자('쓸모없는 정열'), 텅 빈 마을에서 무너져가는 종탑에 날마다 올라 어김없이 종을 울리는 공무원('종 치는 사람'), 들어주는 사람 하나 없는 사막에서 노래하는 여자('사막에서 노래하다')…… 등이 수록되어 있다.
1970년대 라틴아메리카는 대부분의 국가가 쿠데타로 군사정권하에 놓이고 80년대 초중반까지 정치적 억압, 민간인 고문과 학살, 대규모 망명이 계속되었다. 『금지된 정열』에 나타난 부조리한 상황들은 정치적 억압이 길어지면서 사회 분위기는 침체되고 사람들은 무기력해진 라틴아메리카의 실상이다. 예컨대 '추락한 천사'에서 천사는 하필이면 피폭으로 계엄 상황인 도시에 추락한다. 그곳 주민들은 재앙에 이골이 난 나머지 추락으로 다친 천사를 보고도 별로 놀라지 않고 도울 기미도 없다. 그나마 천사에게 온정을 보인 한 여인은 가상 공습훈련 시간에 대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군인에게 끌려간다. 또한 '여행'의 주인공은 국민 대부분이 여권이 없고 여행이란 결코 실현될 수 없는 허몽에 불과한 나라에 산다. 그럼에도 주인공은 유산상속을 계기로 여행을 계획하고 그의 친구들은 그의 여행 준비를 도우며 일상에 활력을 얻는다. 그러나 그의 출발이 한 해 두 해 미뤄지는 사이 한 친구는 그 나라 국민에게 만연한 우울증에 걸리고, 또 한 친구는 어느 대령과 논쟁한 게 불경죄가 되어 투옥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