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부재할 때 남겨진 잔존자들의 시.
초록빛으로 넘실대는 보리밭이 있다. 공중에서는 한 줌의 섬광이 번쩍했다가 사라진다. 그 자리에 누군가가 쓰러져 있다. 그는 눈을 뜨고 일어나 보리밭을 가로지르기 시작한다. 그는 외계로부터의 메신저라기보다는 낯선 곳에 유기된(유배된) 잔존자로 보인다. 움직임은 필사적이지만 고단해 보인다. 어디로 가려는지 왜 가려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가 발을 떼고 가는 곳마다 흔적이 남을 것이고, 길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미확인 비행물체(UFO)의 존재를 떠올린 이들은 이 “쓰러진 자의 화인(火印)”을 두고 “크롭 서클”이라고 했을 터이다. 그리고 그것이 무슨 메시지인지 궁금해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여기에서는 의미는커녕 그 모양새에 대해서도 알 수가 없다. UFO는 일찌감치 사라져버렸다. 그저 이 외로운 잔존자만 남아 있다. 그의 “불굴(不屈)이 넘실”댈 뿐이다. 간혹 바람이 분다면, 그때마다 그가 토해놓은 언어들만 “초록빛으로 이글”거릴 것이다. 장이지의 시 「Crop Circle」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