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현대시〉로 등단하여 시인으로 12년을 살아온 임현정 시인이 느지막하게 펴낸 첫 번째 시집. 아주 느린 걸음으로 밟아온 창작 세계는 그만큼 공들여 숙성되어 있다. 빠르게 진행되는 변화 속에서 역시 빠르게 소비되고 마는 이미지들이 넘쳐나는 요즘, 그 속도에서 잠시 빠져나와 공들인 시간이 빚어낸 깊이에 잠시 빠지고 싶은 독자에게 선물처럼 다가온 작품집이다.
임현정이 이번 첫 시집에서 수행하고 있는 것은 지독한 응시를 통해 ‘끔찍하면서도 우스꽝스럽게 뒤틀린 세계에 존재하는 상실과 부재’들의 목록을 담아내는 일이다. 오래 바라볼수록, 오래 정성을 들일수록 더욱 견고해지는 작업. 시인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쥬리엣 의상실이 아니라,/ 쥬리엣의 상실”이기에 응시의 시간은 오롯이 시에 스며들어 구덩이 같은 깊이로 자리한다. 그것은 이미 없는 것이지만 임현정의 시로 인해 다시, 있는 것이 된다. 마침내 상실과 부재의 목록들이, 그 ‘없는’ 것들이, 지금 여기 시로 다가와 “꼭 같이 사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