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왜 ‘하늘의 천주’를 부인한 걸까?
- 가짜 백서에 얽힌, 18세기 조선의 슬픔
본분에 충직한 예조판서 이만수는 정조 붕어 이후 인산에 쓸 행장을 짓느라 고심하는 한편 어딘가에 남겼을 임금의 유훈을 찾아내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 실마리는 침변서(임금이 가까이 두고 보는 책)에 있음을 직감하고 그에 얽힌 수수께끼를 푸느라 고심한다. 그때 얼굴이 짓이겨진 채 버려진 두 구의 시신이 발견되어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오랜 친구이자 ‘책 읽어주는 남자’ 성정주가 때마침 나타나 이만수를 도와 난마처럼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푸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또 이만수는 이른바 ‘가짜 황사영 백서’를 작성하는 임무를 맡았던 바 그 내막은 이렇다.
1801년 천주교 박해가 일어나 중국인 주문모 신부를 비롯하여 숱한 신도들이 순교했다. 체포령이 내려진 황사영은 충청도 제천의 배론[舟論]마을로 피신, 토굴에 숨어서 박해의 실상을 기록했는데, 그것을 62×38(㎝)의 흰 비단에 1행 110자씩 121행, 모두 1만 3,311자를 깨알같이 써서 옥천희에게 주어 베이징의 주교에게 전달하도록 했다. 그러나 옥천희가 체포되어 백서는 압수되고 황사영도 끝내 붙잡혔다. 백서에는 1785년(정조 9) 이후의 교회 사정, 박해의 상세한 전개 과정이 담겼으며, 폐허가 된 조선교회를 재건하고 신앙의 자유를 획득할 방안을 제시했다. 아연한 조선 조정에서는 관련자들을 즉시 처형하고 탄압의 강도를 더했다. 그런데 청조에서 백서 사본을 보내라고 요구하자 대폭 축소된 가짜 가백서假帛書(16행 923자)를 만들어 박해의 정당성을 해명했다. 이 가백서를 이만수가 작성하게 된 것이다.
한편 형조참의 정약용은 빈민 동네에 묻어 살면서 아픈 이를 돌보는 한편 천주를 모셨는데, 신유박해를 당해 배교하여 ‘하늘의 천주’를 버리는 대신 ‘땅의 천주’를 살렸다. ‘땅의 천주’는 백성이다.
이만수는 친구 성정주의 도움을 받아 임금이 꿈꾼 나라, 즉 임금의 유지를 추적해냄으로써 임금의 인산 전에 행장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렇게 철인군주의 시대가 저물고 역사는 퇴행했다. 그 와중에 이만수는 죄를 사서 경주로 유배되었다. 유배 길에서 이만수는 ‘공맹의 글’에 갇혀 정작 백성을 돌보지 못한 지난 벼슬살이를 회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