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그 낯선 책 한 권에서 시작되었다.”
- 삼정승과 사도세자, 죽음에 얽힌 비망기
이천보는 1749년 이조참판에 오른 데 이어 이조판서, 병조판서를 역임하고 1752년 연이어 우의정, 좌의정에 올랐다가 영돈령부사에 보임되었다. 1761년 영의정에 오른 이후 영중추부사에 보임되었으나 장헌세자(사도세자)의 평양 원유(遠遊) 사건으로 인책되자 음독 자결한 것으로 전한다. 탕평책 추진에 앞장섰으며, 사후 염습할 옷 한 벌이 없을 만큼 청빈하게 살았다. 그는 빼어난 학식과 문장으로 이름이 높았을 뿐 아니라 명재상으로 임금의 신임과 백성의 신망이 높았다. 그런 그에게도 고민이 있었으니, 아내가 딸만 내리 셋을 낳고 더 이상 태기가 없어 대를 이을 아들이 없었다. 그래서 십촌 이국보의 셋째 아들 문원을 양자로 들였다.
이야기는 이천보를 비롯한 삼정승, 삼목대왕(三目大王)으로 불리는 이문원을 비롯한 세 친구, 이렇게 두 축으로 펼쳐진다. 세자가 문둥병에 걸렸다는 흉흉한 소문이 도는 가운데 상황은 어의(직장) 장의삼의 갑작스런 죽음을 기화로 더욱 급박하게 돌아간다. 장의삼이 세자의 환후를 돌보며 작성했다는 병부일지에 세자를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열쇠가 숨어 있을 것으로 판단한 두 세력 간의 병부일지 쟁탈전이 숨 가쁘게 펼쳐진다.
세자의 신경증이 날로 악화되는 가운데 이야기의 시선은 화완옹주에게 쏠린다. 남편 정치달이 죽은 후 친정인 궁궐로 돌아간 옹주는 정감록을 탐독하는 등 야심을 키우는데, 오라버니인 세자가 제거되면 정씨 세상을 만들 수도 있다고 여겼다. 세자를 제거하는 것은 젊은 중전(정순왕후)과도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일이었다. 옹주는 세자를 살뜰히 돌보는 척하여 곁에 두고 시나브로 망가뜨린다. 형조판서 윤급은 옹주에 줄이 닿아 있었다. 중궁전과 아울러 다 한통속이다. 이문원과 그의 친구들의 활약으로 병부일지는 삼정승의 손에 들어간다. 그렇게 상황은 역전된 듯싶은 순간에 세자의 평양 원유 사건이 일어나 세자를 지키려는 세 충신을 절망으로 몰아간다. 그렇게도 지키려던 세자는 끝내 뒤주에 갇혀 죽고, 14년 뒤 그 사도세자의 아들이 즉위함으로써 세자를 둘러싼 미스터리의 안개가 걷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