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리 예술마을이 조성되기 시작한 지 20년이 되었다. 1997년에 마을 만들기 움직임이 태동해 기초작업이 이루어지고, 1998년 2월 서화촌건설위원회 창립총회가 개최되었다. 분별력있는 사람들에게는 한낱 백일몽으로밖에 비치지 않았을 것이다. 곧 쪽박을 차게 될 것이라고, 희대의 문화계 스캔들이 곧 터지겠다며 혀를 끌끌 차던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우리 경제가 1997년 11월부터 IMF 체제하에 들어갔으니 그런 우려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나라가 부도나고 탄탄해 보이던 기업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던 때에 한무리의 문화예술인들이 신기루 잡는 것 같던 예술마을 만들기에 나설 수 있었던 동력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놀랍게도 헤이리에는 연거푸 듣도 보도 못한 방법론이 채택되었다. 수백만 평방미터 크기의 신도시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우리 현실에서 보자면 헤이리는 별게 아닐 수 있다. 그럼에도 세인들이 헤이리를 주목한 이유는 무엇보다 새로웠기 때문이다. 개념도, 조성 방법론도, 결과물 또한 새로웠다. 헤이리는 일찍이 없던 개념이다. 우리 사회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모험이었고 무모한 일이었다. 전체 구성원이 똑같은 권리와 의무를 갖고 창작과 주거에서부터 문화예술의 생산과 소비 전 영역이 유기적으로 관계지워지는 마을 혹은 도시를 만든다는 건 발상조차 쉬운 게 아니다. 흔히들 두세 사람이 함께 집을 지어도 다툼이 일어난다고 한다. 그만큼 공동사업이 어렵다는 것이다. 헤이리 사람들은 단지 돈을 대고 단지설계며 공사 같은 부문은 전문가 집단이 맡았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조합의 결속력에도 미치지 못하는 ‘위원회’라는 어설픈 조직으로 마을의 개념과 마스터플랜을 스스로 세웠다. 거기에 전문가들의 도움이 보태졌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민간 차원에서 이 같은 프로젝트가 진행될 수 있었던 배경과 그 진행과정을 궁금해한다. 헤이리 속에는 밤하늘의 별처럼 숱한 이야기들아 숨어 있다. 겉에 보이는 것은 물 위에 뜬 빙산일 뿐이다.
이 책은 그 같은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것이다. 헤이리 예술마을이 걸어온 길을 사실 그대로 기록하였다. 최근의 변화상까지 담아내되, 헤이리 마을의 주요 골격이 형성되던 태동기 5,6년에 무게중심이 놓여 있다. 저자는 헤이리 마을 만들기가 첫 걸음마를 떼던 때부터 십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사무국 책임자(사무총장)로서 회원을 모으고, 헤이리의 청사진을 다듬고, 조성 공사를 관리하고,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헤이리 만들기의 중심에서 일했다. 헤이리에서 진행된 중요한 결정 가운데 저자를 비껴간 것은 없다. 작은 조형물 하나를 놓는 일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지켜본 사람으로서 사관史官의 마음으로 기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