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집은 4·3이라는 역사적 사건으로 된 문을 열고 들어가, 4·3에 휘말린 개인사에 대한 감정들에 휩싸인 다음, 새로운 생명을 얻음으로써 맞게 되는 삶에 대한 담담한 기쁨을 거쳐, 베트남 민중들에게 손을 내미는 구조로 짜여진 셈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시인은 “생명”이란 단어를 적잖게 이 시집에서 쓰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죽음을 통해 “생명”을 얻고 있는 게 분명해 보이는 이 시집은, 앞으로 또다른 4·3 시집으로 등재될 것이다.
또 한 가지 짚어야 할 점은 이순이 넘은 시인의 첫 번째 시집이라는 것이다. ‘시인의 말’에서 직접 토로했듯이, “늦깎이로” 시를 쓰면서 자신의 과거와 화해하고 동시에 ‘우리’의 아픔을 알게 된 것은 시인의 말대로라면 시를 통해서였다. “詩를 만나지 않았다면/ 허기지고 외로운 시간들/ 생의 변곡점을 지나는 계절들을 잘 견뎌낼 수 있었을까”라는 자문은 일종의 ‘서시’로도 읽힌다. 이종형에게 시는 세상을 달리 보는 놀라운 눈이 되었던 것이다.
제주에 살면서 4·3을 알리는 데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또 시를 쓰는 일에도 조급해하지 않은 삶의 태도가 바로 이 시집 『꽃보다 먼저 다녀간 이름들』이다.